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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itique

디스토피아에서 아이 낳기

급여가 농담처럼 들리는 시대. 부동산 막차와 주식시장, 코인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에게 현세는 연옥이다. 코로나19 상황이 개선되는 데 몇 해가 걸릴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박탈감만 주어진 시대에 아버지가 된다.

UpdatedOn January 26, 2021


될 대로 되겠지. 좌우명이다. 큰 기대 없이 사는 것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실망할 일도 아쉬울 것도 없으니까. 가치관이 달라진 건 가족이 생긴 이후다. 나보다 배우자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결혼 전 책임감 없이 산 것은 아니지만 타인에 대한 책임감은 달랐다. 건강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살았지만, 이제는 내가 아파서 가족이 고생하는 건 싫다. 나 때문에 마음 쓰는 것도,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절박해지는 것도 싫다. 죄책감이 든다. 생활이 궁핍한 게 죄는 아닌데 미안하다. 더는 될 대로 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지난봄 아내가 임신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땐 지금껏 느낀 만족과는 다른 종류의 감정이 느껴졌다. 행복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그걸로는 성에 안 찬다. DNA에 새겨진 본능 그러니까 내 존재의 이유를 알게 됐다. 넌 이 아이의 아버지로 살기 위해 태어난 거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안다. 허기와 수면욕 같은 것. 몸의 거부할 수 없는 순리가 알려준다. 뭐랄까. 살아 있는 기분이랄까. 우리는 지금 산부인과에 다니며 초음파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 갖기 좋은 시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19 시국이라 어차피 해외여행도 못 다니고, 모임 갖기도 어려우며, 집에 머물러야 하니까. 차라리 임신하는 건 인생의 기회비용을 줄이는 알뜰한 시도 같았다. 달리 보면 시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이기도 하고. 조금 더 멀리서 상황을 보자면 2020년대는 디스토피아다. 결혼 당시 우리가 꿈꿨던 미래와는 다르다. 재가 날린다.

아이가 생기고 우리는 이사를 결심했다. 사실 그전부터 이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결혼을 준비하며 신혼집을 두고 매매와 전세 사이에서 고민했었다. 갈팡질팡하는 사이 집값이 폭등했다. 한 달 만에 수천만원이 올랐다. 부동산 아저씨는 시장이 불안정하니 집을 사는 건 위험하다고 했다. 가족도 말렸고, 부동산 좀 안다는 지인도 지금은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족과 이래저래 복잡하게 얽힌 명의를 풀어내는 것도 일이었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그러니까 영혼만 끌어 모으면 살 수 있었던 집이, 제2금융권에까지 손 벌려야 살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전세로 2년만 버티고 조금 더 돈 모아 집을 매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2년의 전세 기간 동안 집값은 가파르게 뛰었다. 그때 사지 않은 걸 후회했다. 집값 폭등에 피눈물 흘린 무주택자들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게 나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안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지금 사는 마을을 좋아한다. 여기서 평생 살아도 좋다. 비싼 동네도 아니다. 서울에서 꽤 저렴한 축에 속한다. 이 기사를 쓰는 2021년 1월 중순에는 집값이 더 올랐다.

사실 지난여름 집을 구입할 방법을 논의했다. 같은 아파트 다른 동 30평대 아파트 매물을 점찍었다. 썩 마음에 드는 조건은 아니었지만 조급했다. 지금 사야만 할 것 같았다. 우리는 계산기를 두들겼다. 나의 영혼과 아내의 영혼을 모두 끌어 모으면 30평대 아파트를 사는 게 불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희생이 요구됐다. 매월 큰 대출금을 낼 여력은 없다. 안 먹고 안 사며 아껴 살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 했는데, 아버지는 내 나이에 집을 마련했다. 어쨌든 경제적인 무리가 따르지만 그래도 아이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아이의 짐을 보관할 자리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안정된 거처를 확보해야 했다. 지금 아니면 영원히 집을 못 살 거라는 불안감에 우리는 은행에 갔고, 대출 상담을 받았다.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는 사이 점찍었던 집이 1억 올랐고, 우리는 전세 계약을 연장했다.

날이 추워질수록 계절이 변할수록 우리의 꿈은 초라해져갔다. 지난 11월에는 20평대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으로 눈을 낮췄다. 지금 사는 집과 동일한 평수다. 아이에게 넓은 공간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안정감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11월에 점찍어둔 집은 지난 2개월 사이 2억이 올랐다. 그럼에도 내가 사는 구에서 가장 저렴한 아파트 중 하나다. 서울 평균 아파트 값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서울 아파트 중위 값을 보며 내가 평균만도 못 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고개를 떨군 동안 주위에는 돈 번 사람들이 늘었다. 코인 가치가 급상승해서다. 비트코인 가격이 3천만원을 넘었다는 뉴스가 보도됐고, 지금이라도 코인 시장에 들어가야 된다는 사람들과 지금이 고점이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카지노에서도 그렇다. 지금 베팅해야 할지, 다음 카드를 보고 걸어야 할지. 선택의 결과는 오로지 내 몫이다. 아니다. 가족의 몫이다. 이제 곧 태어날 아이의 몫이기도 하고. 비트코인을 사고 싶었지만 현금이 없었다. 이유는 궁색하다. 전세 대출금 갚느라, 카드 값 갚느라, 빚 갚는 게 옳은 일인 줄 알았다. 비트코인 가격은 나날이 올랐다. 잠들기 전에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도, 운전을 할 때에도, 사람을 만날 때도 그때 살걸. 후회한다. 아이도 후회할 거다. 우리 아빠가 그때 비트코인만 샀더라면…. 아빠가 그때 집을 샀더라면…. 삼성전자 주식을 샀더라면….

이제는 될 대로 돼서는 안 되는데. 남들만큼 살았고, 30대를 바쳐 일했는데. 일해서 돈을 모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월급명세서에 쓰인 ‘근로소득’을 보면 세상에 이보다 우스운 말이 있을까 싶다. 근로소득 같은 농담이다. 놓친 것은 많고, 후회할 것도 산더미다. 그래도 아버지가 된다. 아이에게 줄 사랑은 충만하다. 부족하지만 재밌는 아버지로서 말이다. 출산 예정일은 2월 초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서 2주간 머문다. 사실 조리원이 이렇게 비싼 곳인 줄 몰랐다. 조리원 비용과 출산율은 반비례한다. 신생아는 줄고, 조리원은 비싸진다. 그러니 지금은 조리원 역사상 가장 비싼 시기일 것이다. 하지만 조리원에는 아버지를 위한 자리가 없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아내도 아이도 나도 당분간 홀로 지내야 한다. 이해는 하지만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왔다는데, 미국과 영국에선 백신 접종이 한창이라는데 정말 코로나19가 종식될까? 아이가 마스크 없는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 아기들에게 맞는 마스크는 없다는데….

가족을 꾸리고 몇 번의 기회를 놓쳤다. 돈을 벌 수 있는, 안정된 거처를 마련할 기회를 잇따라 놓쳤다. 원시 시대였다면 도태되었을 것이다. 일해서 돈 벌고,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평탄한 시대는 지나갔다. 불확실성의 시대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은 원시 시대와 다르지 않다. 디스토피아라 부를 수도 있겠다. 더는 될 대로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와 아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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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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