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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했다 트레일러

트레일러는 유혹적이어야 한다. 관객을 ‘후킹’ 하는 마법이 필요하다. 영상 편집 좀 한다는 감독들이 잘 만든 트레일러를 하나씩 꼽았다.

UpdatedOn February 2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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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단순한 판타지 영화인 줄 알고 가볍게 보려 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예고편에서는 월터가 여러 장소를 열심히 뛰어다니며 여행하는 장면이 연속된다. 잔잔한 분위기를 이룬다. 나 역시 여행을 좋아하고 특별히 아이슬란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예고편에 나오는 아이슬란드 풍광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예고편의 시작은 월터가 소개팅 앱에서 프로필을 등록하는 장면이다. 앱 직원이 월터에게 묻는다. ‘특별한 일을 해보신 적 있나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분위기가 반전된다. 앱 회원 가입 중이던 월터가 갑자기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강아지를 구출하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고, 건물이 폭발하는 장면도 나온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장면들은 월터의 상상이다. 한국판 예고편에서는 초반에 자극적인 요소를 넣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이후 전반적인 메인 스토리가 전개된다. 화려한 첫 장면을 보고 나면 강렬한 액션이 나오리라 예상하게 된다. 제목을 보면 월터가 상상하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리란 것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예고편이 아닌 본편를 보고 나면,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통해 교훈을 주는 영화임을 알게 된다. 나 또한 이 영화를 보고 많은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예고편을 보고, 월터가 어떤 상상을 현실로 만들었는지 궁금해 영화를 보았다. 아직까지도 나에게는 인생 영화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WORDS 신태석(프리랜스 감독)

인상적인 컷
‘특별한 일을 해보신 적 있나요?’ 이 말과 함께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월터가 갑자기 건물로 뛰어간다. 퀸의 ‘Bohemian Rhapsody’가 흘러나온다. 갑자기 뭐지? 하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월터의 어떤 모습이 나올지 궁금해진다. 이어지는 다양한 나라에서의 월터 모습이 인상적이다. 특히나 아이슬란드에서 보드를 타고 달리는 장면은 아마 역대급 명장면에 속할 것이다.

후킹 요소
제목 그대로 월터가 어떤 상상을 할지 궁금하게 만드는 모습이 담겨 있다. 초반의 잔잔한 회사 풍경이 뒤로 갈수록 다이내믹한 장면으로 바뀌며 절정에 이를 때, 결국 월터가 많은 것을 해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되며 호기심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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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Sniper, 2014 아메리칸 스나이퍼

나였다면 어땠을까. 내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가치관이나 상황을 쥐고 흔들 만한 여지를 주는 영화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예고편만 접했을 뿐인데 저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기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저격수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크리스 카일이 있다. 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이 나를 더욱 예고편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본인은 후회를 한 적이 있는가?’ ‘나의 전우들을 죽이려고 한 적들을 죽이려고 했을 뿐이다.’ 질문에 답하는 크리스 카일의 묵직한 인터뷰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상은 남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밀리터리 영화임을 강조한다. 지금부터 펼쳐질 영화는 지루한 군대 이야기가 아닌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다.
내가 <아메리칸 스나이퍼> 예고편에 반한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한 남자의 인생이 보이고 그의 고뇌가 궁금해진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1백60명, 비공식적으로는 2백50명 이상을 죽인 크리스 카일이 처한 운명을 예고편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적에겐 악마, 우리에겐 영웅’. 영웅으로 ‘대접’받고 악마로 ‘취급’당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 대표성을 띠는 장면들로 잘 표현됐다. 바주카포를 집어 드는 아이를 겨누며 갈등하는 장면, 신생아실에서 자신의 아이를 봐주지 않는 간호사에게 소리치는 장면들이 이 남자가 처한 상황과 운명을 잘 보여준다.
10년 전, 막내 PD 시절 수많은 예고편을 만들었다. 20~30초 남짓 주어진 시간 내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궁금증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내야 했다. 제작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강렬한 장면, 자극적인 장면들의 하모니가 바로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예고편은 실제와 비슷한 전투 장면과 함께 한 남자의 인생과 고뇌가 담긴 강렬하고 묵직한 스토리가 펼쳐질 것임을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영상이라 해도 무방하다.
WORDS 김성택(VLUX PD)

인상적인 컷
‘Drop it.’ 바주카포를 집어 드는 아이를 겨누며 갈등하는 크리스 카일의 모습이 긴장감 있게 담겼다.

후킹 요소
미국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저격수의 실화, 남녀가 공감할 수 있는 군대 영화라는 자막은 거들 뿐. 전우를 위해 수많은 적을 저격하고도 떳떳했던 크리스가 영상 진행 단 2분 만에 집에 가고 싶다며 울먹이는 나약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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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quals, 2015 이퀄스

흰색으로 통일된 의상 그리고 모던하다 못해 차갑게 느껴지는 색채 없는 건물들, 예고편이 시작되자마자 이 영화의 미장센에 매료되었다. <이퀄스>는 감정이 통제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SF 로맨스 영화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너무나도 극단적이고 암울하게 표현된 미래이지만 넷플릭스의 <블랙미러>와 같이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면모를 잘 표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모든 감정이 통제되는 공간에서 두 주인공이 가지게 된 감정을 심도 깊고 잔잔하게 표현한다. 반면 트레일러에서는 긴장감 있는 앰비언스 사운드로 시작해 감정이 통제된 도시의 한 직원이 옥상에서 투신자살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동료들과 두 주인공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사일러스(니컬러스 홀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마치 스릴러 장르의 예고편 같기도 하다. 트레일러 중반부터 두 주인공의 복잡 미묘한 감정선이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핸드헬드 촬영 기법으로 불안하고 애틋하게 묘사되는데, 어떤 대화 없이 눈빛 하나만으로 보는 이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연기는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이기도 하다. 이후 배경음악으로 너무나도 좋아하는 노르웨이 출신 아티스트 오로라(Aurora)의 ‘Winter Bird’가 흘러나오고 영화의 쇼트 클립들이 적절하게 교차 편집되면서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마무리된다. <이퀄스>의 트레일러는 스포일러가 가득한 모든 내용을 함축적으로 집어넣은 자극적인 비빔밥 같은 예고편이 아니다. <이퀄스>라는 음식을 맛보기 위해 맛집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고 고른 음식이 나오기까지 그 음식과 어울리는 인테리어, 배경음에 관심을 두며 기다리는 설렘과 비슷하다고 표현하고 싶다.
WORDS 알로하맨(프리랜스 영상감독)

인상적인 컷
크러쉬의 2집 <From Midnight To Sunrise>의 아트워크와 비슷한 공간에서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사일러스(니컬러스 홀트)의 입술을 매만지며 ‘이 느낌이 어떤지만 기억해줘’라는 내레이션이 나올 때. 이 장면을 보고 있자면 끝이 보이는 불안한 사랑에서 오는 심장이 멎을 듯한 먹먹함이 있다.

후킹 요소
트레일러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영상에 어울리는 앰비언스 사운드와 몽환적인 미장센을 극대화하는 배경음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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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pe of Water, 2017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예고편은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온 집 안이 물로 가득 차 있으며 물속에 아주 편안하게 잠든 여주인공이 둥둥 떠 있고, ‘목소리를 잃은 공주’라는 자막이 등장해 말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여주인공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도입부터 영화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그러고는 여주인공의 반복된 일상을 사운드와 배경음악에 맞추어 보여준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컷마다 여주인공의 성격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편집 포인트를 살렸다. 그 후 사운드와 함께 상대 주인공인 괴생명체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난다. 짧은 시간 그 몇 장면으로 판타지물이기는 한데 괴물에게 연민을 느끼고, 괴물을 탈출시켜 문명을 가르쳐주는 스토리라고 추측하게 만든다. 국가에서 병기로 만든 괴물인데, 너무 잘 만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두 번째 의문이 들었다. 갑자기 음악이 다른 장르로 바뀌며 ‘모든 것을 초월한’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라는 타이포그래피가 등장한다. 이어서 대사와 내레이션도 나온다. 주체할 수 없는 설렘을 춤으로 표현하는 여주인공의 모습과 괴생명체를 지키려는 듯한 긴장감 섞인 장면이 순차적으로 보인다. 영화의 제목은 ‘물의 형태’이고, 부제목은 ‘사랑의 모양’이다. 물에는 모양이 없듯, 사랑도 모양이 없다. 정해진 것도 없다. 두 주인공은 초월적인 사랑을 나누게 되리라 예상했다. 사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예고편은 단번에 스토리가 이해되는 영화는 아니다. 자극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이야기하고 싶은 말을 차근차근히 정적인 장면과 적절한 사운드로 긴장감을 높이며 표현한 것이 좋았다.
WORDS 김민주(96wave 연출감독)

인상적인 컷
여주인공이 사랑에 빠져 ‘썸’을 타듯 괴생명체와 교감하는 장면.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들의 사랑에 감동받았고, 여주인공의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이 느껴져 가슴이 저릿했다. 나도 모르게 괴생명체에게 매력을 느꼈다.

후킹 요소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에요’라는 주인공의 수화 장면과 자막이 나오는 부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주제라고 생각된다. 영화에는 소외받는 소수자가 여럿 등장한다. 그들 사이에서 더 소외된 괴생명체를 구해주기 위해 주인공이 용기 있게 나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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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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