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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호수

밀레니얼이라 불리는 세대, 과잉 설비로 비유되는 세대, 1990년대에 태어났을 뿐인 사람들, 소셜 미디어가 탄생할 때 성인이 된 그들. 20대 시인들을 만났다.

UpdatedOn October 2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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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호수
‘시인에게 20대는 있을 수 있는데, 20대 시인이라는 말은 없지 않을까요?’라고 되묻는 육호수를 구태여 시간 곁으로 끌고 가서 꼭 키를 재듯 세워보면, 그는 1991년생, 올해로 29세다. 시인은 시를 쓰는 일에 대해 ‘매번 끝을 밀고 나가는 일’이라고 말했다. 힘들게 밀고 나간 지점에서 비로소 문장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20대의 막막함도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시인은 다시 물어왔다.

육호수 시인의 20대는 어떤 모습이었어요?
여러 모습이었죠. 매번 그때의 ‘나’로부터 도망가려고 했어요. 벗어나고 싶었죠. 견딜 수 없는 모습이 많았던 탓이에요. 그래서 시를 쓰기 전에는 쫓기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타인이라든지, 공포라든지. 또 죽음이라든지 이런 것들에게. 꼭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 같았죠. 그런데 시를 쓰면서 알게 됐어요. 쫓는 사람도 쫓기는 사람도 ‘나’고, 공포도 내가 만든 것임을. 그 사실을 깨닫고 시를 쓴 것 같아요. 이제는 더 도망칠 곳도 없으니까. 도망쳐서 닿은 곳이 여기니까. 결국 시니까.

육호수 시인의 말대로라면 ‘시’는 지나온 시간이잖아요. 그럼 경험인데, 시는 결국 타인의 경험을 헤아리는 일일까요?
어떤 시의 문장들은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에게만 보여요. 그 시간을 지나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냥 글씨일 뿐이죠. 어떤 사건이나 상태를 겪고 있는 사람, 혹은 지나온 사람들에게만 닿는 문장들이 있어요. 그 문장이 가서 박히면, 보이면, 시를 읽는 거죠. 시간과 시간이 만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최승자 시인이 그랬어요. 저도 그런 시를 쓰고 싶어요.

그때 만난 최승자 시인의 시처럼, 지금의 20대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가 있다면요?
반장선거 투표에 자기 이름을 적지 않아서 한 표 차이로 떨어졌다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 시를 추천하고 싶어요. 20대뿐만 아니라 ‘여남소노’,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인류, 그리고 유사 인류, 언어를 가진 외계의 존재들, 혹시 있을지 모를 창조신에게 제 시를 추천하고 싶어요. 좋은 시집은 두 권씩 사두면 더 좋아요.

20대의 어떤 화두를 시로 가져오고 싶어요?
저는 세대를 생각할 만큼 넓은 시각으로 살아오지 않았어요. ‘어떤 세대나 사상에 속해 있다’는 의식도 없고요. 게다가 시의 바깥에 있는 화두나 나름의 깨달음을 담은 시들은 거의 실패했죠. 만약 20대라는 주제로 가져오고 싶은 화두가 발생한다면, 그건 시 안의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진 다음의 일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 역시 시를 지탱하기 위한 하나의 기둥으로 그곳에 있을 뿐일 테죠. 그래서 모르겠어요. 알 수가 없는 거죠.

그럼 반대로, 20대가 육호수의 시를 읽는 이유를 생각해본다면요.
제 시는 20대뿐만 아니라 30대도, 40대도 그리고 10대도 읽고 있어요. 1952년생의 어떤 시인께서도 제 시가 좋다며 필사했다는 말씀을 하셨죠. 그러니까 세대와는 관계없이, 누군가에게 제 문장이 ‘읽히기’ 때문에 저의 시를 읽는 거라 생각해요. 저는 시가 완전히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멀게 느껴진다면 그건 우리 곁에, 한두 발 앞에 있는 걸 보기 어려운 정도일 뿐이죠.

20대는 어떤 시간이라고 생각하나요?
20대는 시간일까? 저는 아닌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구획해 강요되는 ‘외적 자아’인 것 같아요. 그것을 자신의 ‘내적 자아’라고 착각하는 순간, 정말로 20대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20대’는 없다고 생각해요. 같은 맥락으로 30대도, 50대도, 80대도 마찬가지죠. 저는 20대를 어떤 시간으로 한정하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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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20대를 시간으로 보지 말고, ‘젊음’으로 바라봤을 때 떠오르는 시어가 있다면요?
‘요절’ ‘선언’ 같은 단어들이 생각나네요. 이유라면 시인에 대한 환상도 충분히 이상하지만, ‘요절한’ 시인에게는 더 이상한 환상이 따라붙는 것 같아요. 물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자유겠지만, 이른바 ‘요절한 시인’에게 부러운 건 있어요. 그들은 초기 시에서 저질렀던 ‘선언’을 물려야 하는 시간을, 이전에 발간한 시집 속의 자신을 배반하고, 죽이고 달아나야 하는 지리멸렬한 시간을 면했으니까요. 어떤 연유로든 백지 위에 시어가 발생했다면, 그 시가 가진 어떤 인력이 선별적으로 그 시어에 작용했다는 것이고, 다시 시어는 발생한 즉시 그 시에서 어떤 작용을 하게 되죠. 그 작용이 해당 시에서 유효한지, 아닌지는 초고를 쓰고 퇴고를 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 미적 취향에 맞춰서 시어를 빼거나 다듬거나 하지는 않아요.

요즘 시는 어디에서 소개되고 읽힐까요? 시가 놓이는 곳이 꼭 시집이어야만 할까요? 시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보이는 시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시는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시를 찾는 곳에서 읽힌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시가 많이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시가 읽히지 않는 건 아니죠.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 시를 쓰는 것도 아니고요. 시집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의 첫 장에도 썼지만, 저는 ‘새를 만난 적 없는 새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써요. 이 시를 정말로 읽어줄 누군가에게. 예를 들어 저는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전시된 시를 볼 때면 정말 피로해져요. 옆집에 사는 누군가가 코인 노래방에서 부르는 무작위의 노래들을 지하철을 기다리는 내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이해될까요. 시는 ‘적막’을 매개로 시간과 시간을 통해 작용하죠. 그런데 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가장 피로한 출퇴근 시간에, 거기다 사람과 사람에 치여서 몸 가누기 힘든 공간에서, 무작위의 시들을 전시해놓는 건 ‘소음’이고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반면, 요즘에는 복합 문화 공간에서 시인과 독자가 만나 함께 시를 읽는 시간을 나누거나, ‘시’와 ‘공간’을 잇는 전시들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는 언제나 함께하고 싶고, 응원하는 마음이에요. 저는 시가 시집의 형태일 필요도 없고, 활자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우리는 시를 통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요?
전부 다를 것 같아요. 제 경우를 이야기하자면, 저는 시와 함께였기 때문에 지날 수 있었던 시간을 겪었어요. 그래서 시가 가진 힘을 믿어요. 그런데 또 시가 제게 즐거움을 주진 않아요. 시를 기다리는 대부분의 시간은 고통스럽거든요. 쓰는 동안에도, 퇴고하는 과정도 고통스럽고요. 초고를 쓴 날에는 손발에 땀이 나고 귓속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 잠을 잘 못 자요. 시를 읽는 시간 역시 즐겁지 않죠. 그 시인의 시간과 세계 속으로 진입해야 하고, 그 사람의 이미지들을 감각해야 하고, 또 성큼성큼 도약하는 사유들을 따라가야 하니까요.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은 대부분 시의 행간에 낭떠러지도 많고, 칼도 많아요. 혹시 케이크 속에 숨겨둔 유리 조각은 없는지, 긴장하며 읽게 되죠. 하지만 그럼에도 시를 읽는 이유라면, 시를 통해서만 견디게 되는 지리멸렬한 시간들이 있으니까요. 시를 통해서만 전해지는 시간들이 있는 거죠. 저는 여러 번, 오래 살고 싶어요. 시를 읽고 쓰면 그럴 수 있다고 믿어요. 믿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남은 선택지가 이것뿐인데.

행간에서 시리즈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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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후

문보영

최지인

홍지호

양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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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신기호, 이경진
PHOTOGRAPHY 김선익

2019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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