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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의 미래

UpdatedOn September 25, 2019

LA 다저스 류현진이 순항 중이다. 아니, 훨훨 날고 있다. 8월 14일 현재 방어율은 1.45. 이 밖에도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9이닝당 최소볼넷 등 많은 수치에서 MLB 1위를 달리고 있다. 거기에 NL 사이영상 경쟁에서도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올스타전에 선발투수로 나서는 영광까지 얻은 류현진의 황금시대가 흥미진진하다. 여기서 잠깐. 그럼 FA 자격을 얻는 내년의 류현진은 어떤 모습일까? 류현진의 미래를 슬쩍 점쳐보자. 커리어 하이를 맞은 류현진의 FA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지. 당장 2020년의 거취부터 그 너머의 먼 미래까지. MLB를 평정하고 있는 한국 최고의 투수 류현진의 다음은 어떤 모습일까.

EDITOR 신기호

다중우주와 류현진의 미래

멀티버스(Multiverse). 다중우주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텍사스에 입단하는 류현진과 다저스에 남는 류현진, 그리고 제3의 팀을 택하는 류현진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써내려갈 것이다.

하나. 아시아 선수 최초의 사이영상 수상! LA 다저스와 결별한 류현진에게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이 나타났다. ‘원더키티’의 해인 2020년은, 2002년 박찬호와 2014년 추신수에 이어, 류현진이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둘. 류현진의 가을이 다시 시작됐다. 월드시리즈 상대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저스틴 벌랜더. 사이영상을 사실상 확정한 두 투수는, 올스타전에 이어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다시 만났다. 류현진은 1988년 이후 다저스의 첫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맨 앞에서 이끌었다. “에이스를 놓치지 말라!” LA가 들끓었다. 류현진은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를 해고했다. 다저스에 남았다.

그리고 셋. 뉴욕 양키스의 28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다저스는 3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류현진은 일본인 투수들도 이루지 못한 사이영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다저스가 너무 후려친 3년짜리 계약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류현진은 돈이 아닌 좋은 환경을 고르기로 했다. 류현진이 선택한 팀은 1999년생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팀의 간판이 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였다.

펫코 파크에서 열린 2020 시즌 개막전이자, 류현진의 파드리스 데뷔전에서 박찬호의 시구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 페르난도 타티스였다. 둘은 1999년 대결에서 메이저리그에 다시 없을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가정도 여기까지. 류현진이 어떤 선택을 하든, 텍사스에서의 박찬호를 보면서 느꼈던 고통이 문신처럼 남아 있는 사람들은 류현진에게 단 한 가지, ‘롱런’을 바랄 것이다.

류현진은 동산고 3학년 때인 2003년 토미존 수술로 불리는 팔꿈치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2015년에는 성공률이 극히 낮다는 어깨관절와순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2016년에는 팔꿈치에서 괴사 조직을 제거하는 수술이 이어졌다. 하지만 세 번의 수술과 지독한 훈련을 번갈아 반복하며, 이번 시즌 류현진은 프로 데뷔 후 가장 건강한 몸을 유지하게 됐다. 위험한 투구 폼은 부상을 불러온다. 하지만 류현진은 부상과 가장 거리가 먼 부드러운 투구 폼이다. 류현진의 부상은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혹사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류현진이 국가대표까지 소화하며 당한 혹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지난 30년간 없었던 일이었으니까. 투수의 생명력이 다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부상을 당해 공을 더 이상 던질 수 없거나, 나이가 들어 구속을 잃거나. 하지만 구속이 사라져도 거뜬하게 살아남는 투수가 있다. 바로 ‘피처빌러티’라는 재능을 가진 극소수의 투수들이다. 뛰어난 제구와 다양한 볼 배합, 탁월한 완급 조절 능력을 겸비한 이들은 마운드 위에서 이른바 ‘환갑잔치’를 연다.

류현진을 처음 본 현지 팬의 상당수는 데이비드 웰스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러나 좌완이라는 점과 큰 덩치를 제외하면 둘은 닮은 부분이 별로 없다. 류현진과 달리 웰스는 커브가 주무기인 투수였다. 하지만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류현진을 설명하기 위해 웰스의 이름을 꺼낸다. 웰스만큼 오래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류현진이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1998년 만 35세의 웰스는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뉴욕 양키스가 정규 시즌 114승을 거둔 해, 웰스는 세 번의 1차전 선발승(디비전시리즈, 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월드시리즈)으로 양키스의 우승을 이끌었다. 2004년 만 41세의 웰스는 무려 195이닝을 던지고 12승(8패 ERA 3.73)을 따냈다. 다음 해인 42세의 시즌에도 15승과 함께 184이닝을 소화한 웰스는 32세 시즌 이후 총 176승을 거둠으로써 통산 239승의 대기록으로 은퇴했다. 웰스가 첫 번째 올스타가 된 것은 만 32세인 1995년이었다. 그리고 류현진 또한 만 32세의 나이로 첫 올스타가 됐다.

이번에는 류현진 이야기를 해볼까? 류현진은 포심과 투심, 체인지업, 컷패스트볼(커터), 커브의 5가지 공을 던진다. 그리고 5가지 공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위치(로케이션)로 들어가도록 ‘거부할 수 없는 명령(커맨드)’을 내린다. 류현진은 5개 구종 중 어떤 공의 제구가 가장 자신 있냐는 질문에 대해 “모두 다”라고 답했다. 지난 6월, 류현진은 첫 번째 쿠어스필드 경기에서 4이닝 7실점에 그쳤다. 하지만 8월 두 번째 쿠어스필드 방문에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2014년 이후 봉인했던 슬라이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날 류현진은 투수들의 무덤에서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오랜만에 꺼내 든 슬라이더는 결국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10% 이상 던지는 공이 5가지를 넘는 선발투수는 류현진을 포함해 11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11명 중 한 명은 35세 시즌인 올해도 경쟁력 있는 모습을 유지하는 좌완 콜 해멀스(시카고 커브스)다. 그리고 올 시즌 쿠어스필드에서 6이닝 이상 무실점을 기록한 원정 팀 투수는 단 두 명, 류현진과 해멀스다.

웰스와 해멀스, 통산 305승의 톰 글래빈, 만 47세의 나이로 역대 최고령 완봉승을 달성한 제이미 모이어, 1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와 14년 연속 200이닝을 만들어낸 마크 벌리 등. 랜디 존슨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제외하면, 롱런하는 좌완의 첫 번째 공통점은 뛰어난 체인지업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또한 안전한 투구 폼으로 던지기 때문에 구속 경쟁력이 떨어지는 포심을 도와줄 컷패스트볼이 필요하다. 때로는 삼진보다 더 효과적인 땅볼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투심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류현진은 어깨 수술 후 컷패스트볼과 투심 장착에 성공했다. 심지어 류현진은 수비, 주자 견제, 희생번트 능력까지 메이저리그 최정상급이다. 류현진은 롱런에 필요한 6개의 스톤을 일찌감치 모아둔 것이다.

글쎄, 분명한 건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보장된 미래 또한 있을 리 없다. 다행인 건 미래를 걱정하기에는 류현진의 현재가 너무나 화려하다는 것이다. 현재를 즐기다 보면 류현진의 다중우주 중 하나가 곧 우리 앞에 펼쳐지지 않을까? 결과는 어찌 됐든 희망적일 거고.

WORDS 김형준(야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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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신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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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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