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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런던, 뉴욕, 밀라노 그리고 서울

서울이 새로운 패션 수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UpdatedOn December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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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는 패션계의 여러 행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2018년을 기점으로 하이 패션 중심에 스트리트가 확실히, 그것도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기존 헤리티지 브랜드는 영속성을 잃어가면서까지 브랜드를 전면 수정하고 있다. 패션 자체를 ‘위트’와 ‘비꼼’으로 구성해도 승승장구하는 브랜드가 생기는가 하면, 신발에 헬베티카(Helvetica) 폰트를 얹어 사람들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디자이너가 왕좌에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끊임없는 창조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도 꽤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서울은 매우 특이한 도시다. 낯선 이의 눈으로 서울을 바라본다면 매우 생경한 모습일 것이다. 우선,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겹쳐 살아간다. 도시의 속도는 아주 빠르고 복잡하다. 고도화된 IT 기술과 네트워크는 사람 사이를 촘촘하게 엮는다. 도시의 전파 속도가 매우 빨라서 그런지, 유행이 급물살을 타면 금세 주변을 채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어느덧 이 도시가 요구하는 기준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더 좋은 곳, 더 나은 것, 더 멋진 것을 추구한다. 그러니까 더 좋은 곳을 찾아 ‘서울’이라는 둥지를 떠나기보다는, 그 둥지 자체를 향상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패션은 생활과 어우러져 영향을 주고받기를 계속한다. ‘시선’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특성상 외적인 모습은 더욱 도드라진다. 일상 모습을 거의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는 혹은 의도적으로 노출하는 이 시대, 패션은 도시와 함께 진화해가고 있다. 아마 도시 내부에 있는 우리는 변화의 모습에 익숙해져서인지 그 진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듯싶지만, 외부인 눈에는 이 도시의 역학이 더욱더 진보적이고 주체적으로 비치는 듯하다.

미스터포터(Mr. Porter)의 에디토리얼(Editorial)은 ‘서울(Seoul)’이라는 작고도 큰 도시가 왜 패션에서 앞서 나갈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다섯 가지나 제시했다. 그중 K-팝은 서울의 패션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야깃거리다.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파급 효과가 매체의 힘과 맞물리면서 더욱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확실히 이제 K-팝은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가공할 만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시장으로서 ‘아시아 시장’의 기회와 이곳에서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잡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비주얼’ 사업이다. K-팝이 비주얼 측면을 더욱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패션과 뷰티가 정말로 중요해졌고, 그에 따라 ‘서울’이라는 곳의 시의성을 무시하지 못하는 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물론 그전부터 세련되고 감각적인 것들을 탐미하고 잘 다뤄온 우리의 특성 또한 해당 산업이 더 잘나가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어느덧 엔터테이너들이 하이 패션을 소화하고 무대 밖에서도 그들의 패션이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 계속 증명되고 있어, 하이 패션 영역의 브랜드들이 아이돌과 셀러브리티 그리고 심지어는 인플루언서 영역까지 관리한다는 것은 이제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미스터포터의 에디토리얼에서 언급한 내용보다도 간과할 수 없는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한국이 ‘버즈(Buzz)’ 즉, 입소문이 빠른 곳이라는 것이다. ‘밀라노 스트리트(Milan Street)’라는 생소한 조합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 써네이(Sunnei)는 이러한 특성을 잘 이용해서 한국에서 인지도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 한글을 이용한 일러스트를 업로드한다거나, 한국 시장의 입소문 정서를 활용해서 슈즈 라인을 인기 아이템으로 만들기도 했다. IT 기기에 누구보다 친숙하고 모바일, 온라인으로 콘텐츠와 정보를 받아보는 데 가장 친숙한 서울 사람들은 패션에도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이들을 따라서 작은 규모의 트렌드가 형성되기도 하고, 특정 아이템이 동나는 ‘대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서울’의 특성이 패션 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다. 맹목적인 유행은 다양성을 저해하며, 패션 산업의 구조를 비튼다. 도매에서 소매로 넘어가는 구조와 장인 정신 없이 제작돼 한시적 소비에 그치는 형태의 패션은 ‘진정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와 대립각을 세우며 본연의 행보를 보여주는 브랜드도 다수 존재하고, 새로이 생겨나기도 한다.

‘퀀텀 프로젝트’를 통해 일약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그리고 LVMH 프라이즈 진출과 더불어 2019 S/S 런던 패션위크에서 주목받은 ‘블라인드니스(Blindness)’, 이번 서울 패션위크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 브랜드인 솔리드 옴므(Solid Homme)가 그 예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독창성(Creativity)’ 면에서 각각의 정체성을 지키며 꾸준히 각자의 길을 간다. ‘13’이라는 프로젝트로 뉴욕에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하여 퍼렐 윌리엄스 그리고 카니예 웨스트와 협업을 예정 중인 젠틀몬스터는 아마도 가장 독특하고도 앞선 행보를 보여주는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 또한 런던의 신인 디자이너 발굴 프로젝트 뉴젠(New Gen)과 더불어 양국의 MOU 체결로 런던 패션위크에 첫 진출하게 된 블라인드니스 또한 서울이라는 패션 수도를 풍부하게 해줄 독창적인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 젠더리스(Genderless) 콘셉트를 바탕으로 다운된 톤과 오간자 소재와 프릴의 중첩을 활용한 디자인은 블라인드니스만의 몽환적인 컬렉션을 모두가 주목하게끔 만들었다.

한 달 전, DDP에서 또 한 번 서울 패션위크가 열렸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이 곡선 건축물의 선을 따라서 우영미 디자이너의 솔리드 옴므(Solid Homme) 탄생 30주년 컬렉션 런웨이를 선보였다. 1988년도부터 이어진 이 브랜드가 패션에 끼친 영향을 갈무리하는 듯, 새삼스레 변한 서울의 모습이 스쳐간다. 패션에 있어서 서울은 파리, 런던, 밀라노, 뉴욕에 비해 상당히 역사가 짧지만, 발전 속도는 결코 더디지 않았다. 이 도시의 역동성,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찾으려는 이들의 안목이 서울을 향하고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서울이 새로운 패션 수도가 되리라는 가능성이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상상은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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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서동현
WORDS 김수호(패션 칼럼니스트)
ILLUSTRATOR HeyHoney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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