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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이후의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지금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픽션은, 혹은 정치 드라마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6이 가르쳐준다.

UpdatedOn December 1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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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오랜만에 다시 본 사람이라면 일단 두 번 정도 놀랄 수밖에 없다. 그 유명한 오프닝 장면에서 제일 처음 뜨는 이름이 케빈 스페이시가 아니라 로빈 라이트라는 사실에 한 번, 여섯 번째 시즌의 에피소드 여덟 개를 통틀어 케빈 스페이시의 얼굴이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지난 시즌에 케빈 스페이시가 맡은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가 아내이자 부통령인 클레어 언더우드(로빈 라이트)에게 대통령직을 넘기고 떠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아주 떠난다는 얘기는 당연히 아니었을 것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진이 한창 시즌 6을 준비하던 지난해, 할리우드에서도 ‘#미투’ 선언이 줄줄이 쏟아졌다.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고발이 주를 이루던 와중에 배우 앤서니 랩은 10대 시절 케빈 스페이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어 <하우스 오브 카드>의 일부 제작진도 그로부터 원치 않은 신체 접촉을 당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주인공이 성폭력 가해자로 밝혀졌다. 자, 넷플릭스와 제작진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있었을까? 하나, 당사자를 하차시킨다. 둘, 아무리 그래도 하차는 아니다.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서 시간이 조금 흐른 후 새 시즌을 시작한다. 셋, 상관없다. 그냥 제작을 감행한다. 다행히 그들은 케빈 스페이시를 하차시키고 로빈 라이트를 완전한 주인공으로 끌어올렸다. 백악관을 떠나 바깥에서 대통령을 조종하는 권력자 프랭크 언더우드와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 대통령 클레어 언더우드의 대립이 아니라, 온전히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클레어 언더우드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시즌 5에서 시즌 6으로 건너오는 동안 프랭크 언더우드는 누군가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처리됐다.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 빠진 후 서사를 새롭게 직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차라리 작품을 끝내는 게 훨씬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김생민의 성폭력 전력이 드러난 이후, 송은이와 김숙이 있음에도 <김생민의 영수증>을 바로 종영시켜버린 KBS의 경우를 떠올려보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문제의 발단이라고 판단되는 무언가를 눈앞에서 치우는 게 편리할 것이다. 로빈 라이트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새 시즌을 아예 포기하려 했던 넷플릭스와 제작진을 도리어 설득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에피소드 8개는 단지 케빈 스페이시를 빼고 가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백인 중년 남성의 통치는 이제 끝났습니다.” 극 중 클레어의 선언은 시대에 대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선언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권력을 가진 남성이 그 권력을 이용해 성폭력을 저지르고, 그럼에도 권력자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수 있었던 시절과 영영 결별하겠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동시에 지금 여성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직시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시즌 6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대통령인 클레어가 지독한 ‘악플’들에 시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비난하거나 ‘C’로 시작하는 욕설을 퍼붓는다. 한때 프랭크 재단에 돈을 지원하려 했던 재벌 빌 셰퍼드도, 부통령 마크 어셔도 클레어를 끊임없이 무시한다. 그들에게 클레어는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대통령이 아니라, 프랭크가 남기고 간 유산이며 꼭두각시다. 그러나 클레어는 그 모든 상황에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든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직접 보면 이 표현이 비유가 아님을 알게 될 거다.) 클레어 언더우드가 아니라 클레어 ‘헤일’이라는 자신의 원래 성을 찾아오고, 프랭크와 자신은 이제 어떤 관계도 없음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다른 한편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남녀평등 헌법 수정안의 핵심 구성 요소를 통과시킬 것이라고 약속한다. 특히 클레어가 자신의 음해 세력을 모두 내쫓고 새 내각을 100% 여성으로만 꾸리는 장면은 이번 시즌에서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순간이다. ‘#미투’ 선언의 물결 이후, <하우스 오브 카드>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알다시피 현실과 픽션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방영 초기부터 지금까지 <하우스 오브 카드>를 둘러싼 극찬은 정치를 둘러싼 더러운 현실을 실감나게 그려낸다는 데 집중돼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리얼함을 담보한 작품이 정치가 아닌 영역의 현실에 무감해도 될까? 전 세계적으로 남성이 저지르는 성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 이는 곧 힘 있는 자리를 대부분 남성이 차지하는 환경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무시해도 괜찮을까? 정치는 과연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과 별개로 봐야 할까? 마지막 시즌의 주인공을 여성인 클레어가 맡은 것은 케빈 스페이시의 성폭력 범죄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였지만,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지금 필요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극에 반영한 것은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진과 책임 프로듀서 중 한 명이기도 한 로빈 라이트의 의도적이며 윤리적인 선택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6이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는 중간선거가 치러졌다. 다분히 계산된 방영 시점이었겠지만, 더 놀라운 일은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1백 명 이상의 여성이 하원 의원으로 선출된 것이다. 전체 의석 수로 따지면 20%를 조금 넘는 비율이지만 역대 최다라는 사실이야말로 중요하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도 클레어가 100% 여성으로 구성된 내각을 소개하는 장면의 ‘움짤’과 함께 ‘여성들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라는 요지의 축하 트윗을 올렸다. 스포일러이기에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클레어가 다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드라마의 결말이 의미하는 바는 대략 이렇다. 남성 중심 사회의 문제점을 목격한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여성은 남성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는다. 세상은 바뀌고 있으며 <하우스 오브 카드>는 그 변화를 모른 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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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경진
WORDS 황효진(저널리스트)
ILLUSTRATOR HeyHoney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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