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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회사를 다닌다는 것

‘메이드 인 덴마크’는 이렇게 탄생한다.

UpdatedOn October 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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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직장은 덴마크 장난감 회사 레고였다. 덴마크, 더 나아가 북유럽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관점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당시 20대였던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들이 많았다. 그들의 느린 피드백과 한 달이 넘는 휴가, 시즌 도중 하던 일을 멈추고 다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야 하는 등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는 문화가 태반이었다. 10여 년이 지나 다시금 덴마크 회사인 루이스 폴센 본사에 근무하면서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이 조금씩 공감되기 시작했다.

루이스 폴센 덴마크의 업무 시작은 9시지만 대부분 7시 30분~8시에 출근한다. 90% 이상의 직원들이 자전거를 이용해 아침 운동 겸 출근을 한다. 대부분 회사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같이 먹는다. 아침 식사 후 각자의 취향대로 커피를 만들어 마시며 업무를 시작한다. 일 자체가 삶의 일부로 느껴질 만큼 업무 시작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5시 이전에 퇴근하면 외부 활동을 하는 직원들은 거의 없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저녁 시간을 즐긴다. 덴마크 회사의 작업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창문이다. 회사 직원들에게 자연광을 직접 받는 게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음악은 필수다. PR팀은 대부분 헤드폰을 끼고 자기 취향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작업한다. 루이스 폴센은 조명 제품을 80% 이상 핸드메이드로 만들기 때문에 단순히 ‘많이 파는 것’보다 ‘이 제품을 사는 소비자에게 어떤 느낌을 전달하느냐’가 우선이다. 단기간의 매출 향상에 대한 대책 회의는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긴 시간(최소 2~3년)에 걸쳐 꾸준히 컬렉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성장률과 판매 실적은 그 이후 본격 논의한다.

예를 들어 루이스 폴센의 광고 비주얼은 제품 못지않게 그 뒤의 공백, 또는 전체적인 공간의 느낌을 매우 중시한다. 공간의 배색과 어우러지는 조명도 루이스 폴센만의 강조점이다. 60세가 넘은 노장 비주얼 디렉터가 여전히 루이스 폴센 전체 비주얼을 총지휘한다. 본사 근무 시 가족과 함께 오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물론 모든 체재비는 회사가 지불한다. 가족과 떨어져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가족 모두가 회사를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경험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방침이다. 첫 입사날, 회장과 티타임을 가졌는데 첫 질문이 ‘가족과 같이 왔는지’였다. 그다음 멘트는 다음엔 가족을 꼭 데려와서 인사시켜달라는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덴마크 회사들은 가족이 안정되어야 업무 효율이 더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본격 대중 마케팅 이벤트를 펼치기 전에, 회사 내에서 직원들과 함께 축제 형태의 이벤트를 먼저 연다. 보통 본사 1층 쇼룸에서 모든 직원들이 참석해 먹고 즐기며, 곧 본격 마케팅을 펼칠 신제품에 대한 자체 평가, 새롭게 출시 예정인 컬렉션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눈다. 업무에 따라 오전에 이벤트를 즐기거나, 오후에 참여하는 식이다. 업무가 잔뜩 밀린 직원은 전화를 받다가, 돌아와서 음식을 먹다가, 10분 수다를 떨고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등 하루 종일 펼쳐지는 이벤트에 자유롭게 참여한다.

회사의 이벤트는 마케팅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게 회사 방침이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은 대부분 디자인 관련 물건일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그해에 가장 유행하는 디자인이 반영된 학용품을 선물한다든가 한다. 거실에 모셔두는 것이 아닌, 즉시 활용이 가능하면서도 디자인적인 장점이 있는 제품들을 주로 선정한다. 이를 위해 1개월 이상 관련 직원들이 회의를 할 정도로 치열하게 논의한다. 올해는 루이스 폴센 인기 컬렉션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미리 선물을 공개한 이유는, 색상을 각자 집의 톤앤매너에 맞게 선택해 메일로 답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선물에 대한 직원들의 반응도 체크하는데 그 호응도에 따라 다음 해 선물의 범위를 결정한다. 선물이 공개될 때에는 마치 축제처럼 (세계 곳곳 지사까지 포함해) 인트라넷에 무수한 메일들이 오고간다.

회사는 물론 이익을 끊임없이 창출해야 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덴마크 회사들은 영속성 또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한국은 단기간에 고속 성장을 하는 회사,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지속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먼저 찍힌다. 또한 덴마크 회사들은 소비자가 제품을 즉각 구매하도록 자극하기보다는 감성을 전달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교육적 요소까지 도입해 그들의 안목을 천천히 오랫동안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특히 루이스 폴센은 단기간의 성장에 대해 내부적으로 알람 신호를 보내는 부서가 있을 정도로 급격한 성장보다는 소비자와의 끈끈한 유대감, 특히 그 첫 번째 연결 고리인 직원들을 오랜 기간 천천히 교육하고, 안목을 끌어올리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정말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굳건히 해 결국 회사를 오랫동안 영속시킨다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하여 1백여 년의 역사라는 것은, 그리고 여전히 생생하게 뛰는 오랜 역사의 기업이라는 것은. 참 만만치 않은 공력임을 새삼 느끼고 있다.

올해 말, 루이스 폴센은 17세기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지은 덴마크식 전통 건물로 사옥을 옮긴다. 그곳 1층에는 현재 ‘뮤지엄’이라는 가제가 붙어 있다. 지금 사옥에도 1층에는 루이스 폴센 조명의 히스토리를 알 수 있는 광범위한 존이 있는데, 사옥을 옮기면 거의 박물관에 가까울 정도로 1층 전체를 꾸밀 것이라는 사전 광고나 마찬가지다. 사옥을 찾는 외부인에게 경탄을 불러일으키고, 내부 직원들에게는 자부심을 심겠다는 선언이다.

이사를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멋진 사옥을 갖겠다는 뜻도 있지만, 덴마크의 전통 건물들은 창문이 무척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사옥에서 루이스 폴센은 모든 직원이 각각 자신만의 창문을 갖게 되는 전무후무한 사무실 배치를 추진하려고 한다. 자연광에 가까운 빛을 디자인하는 회사인 만큼 모든 직원이 자연의 빛을 직접 느끼며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결국 회사에게 이익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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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서동현
WORDS 박성제(루이스 폴센 한국마켓 매니저 이사)
ILLUSTRATOR HeyHoney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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