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관
지난 4월, 취향관이 40여 년 전 아주 멋지게 지은 양옥집에 새 현판을 달고 사람들을 맞기 시작했다. 취향관은 커피 하우스가 진화한 형태인 19세기 프랑스의 살롱,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대학가 주변에 빼곡하게 들어선 다방과 비슷한 결을 공유한다. 오래전 살롱, 다방에 모인 지성인이 그랬듯 취향관에서도 예술적 취향, 정치 관점, 섹슈얼리티를 논하며 어떤 담론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가?’와 같이 우리를 보다 가까이에서 감싸고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고 서로 위로한다. 좋은 책을 추천하고, 최근 들은 기막히게 좋은 음악을 함께 감상하는 식으로 말이다. 술장에 빽빽하게 들어찬 위스키며 와인은 대화를 위한 윤활제가 된다. 푹신한 암체어가 있는 거실, 흐릿한 램프만 밝힌 바를 전전하며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그것도 아니면 고요한 침묵만 교환해도 좋다. 수시로 열리는 프로그램이나 전시는 홈페이지에 공지된다. 연어덮밥을 먹으며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말하는 ‘미식독서단’이나 예술이 오늘날의 광고, 사진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살피는 ‘아트살롱’ 같은 프로그램이 이미 4월에 한바탕 열렸다. 취향관은 5월 역시 바빠질 예정이다. 자세한 프로그램은 취향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5길 20
문의 02-332-3181
안전가옥
인터넷 소설이 나온 90년대 후반 이후 판타지 소설이나 SF, 추리 소설 같은 장르 문학이 본격적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래서 장르 문학이 주류에 포섭되었는가?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고개를 가로로 흔들어댈 수밖에 없다. 여전히 장르 문학 독자를 향한 시선은 ‘마니아’에서 머문다. 성수동 공장 밀집 지대에 문을 연 안전가옥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 그중에서도 장르 문학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다. 안전가옥이라는 이름을 경유해 공간을 소개하자면, 적어도 이곳 안에서 마니아는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좋아하는 이야기를 ‘안전하게’ 마음껏 즐기고, 창작자는 영감을 얻어 집필에 ‘안전하게’ 몰입할 수 있다. ‘글 쓰는 장르 문학 도서관 안전가옥입니다’라는 뚜렷한 선언이 입간판에 쓰여 있어 왠지 이곳에서는 어떠한 편협한 취향이라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믿음이 든다. 라이브러리에 빼곡하게 진열된 2천2백여 권에 이르는 장르 문학 도서는 운영 시간 동안 언제든 열람할 수 있고, 멤버십 서비스를 이용하면 건물의 2~3층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개인 집필도 가능하다. 지난 3월엔 출판업 등록도 마쳤다고 하니 앞으로 더 재미있는 일이 많이 벌어질 듯하다.
주소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길 101-1
문의 02-461-0601
연남방앗간
높은 천장에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달려 있는 샹들리에, 2층으로 이어지는 두꺼운 핸드레일과 기름을 바른 듯 반질반질한 나무 계단. 대가족이 살아도 넉넉했을 법한 근사한 양옥집에 연남방앗간이 들어선 것은 지난 4월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연남동에는 흔한 방앗간 하나 없었다. 마지막까지 연남동에서 버티고 있던 동남방앗간마저 몇 해 전, 와인을 수북이 쌓아놓고 파는 술꾼들의 방앗간으로 변했다. 이제 연남동에 남은 방앗간은 다시 연남방앗간뿐이다. 연남방앗간은 과거 목욕탕, 세탁소, 미용실과 함께 동네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방앗간의 모든 기능을 도맡는다. 직접 짠 참기름을 판매하고, 발품을 팔아 전국 각지에서 명인이 착유한 참기름을 구해 소개한다. 뿔뿔이 흩어져 있는 동네 책방, 슈퍼마켓, 가구점도 연남방앗간 안으로 우르르 몰린다. 흑심, 금옥당, 든해 티 하우스, 무니 포스트, 휴 크래프트의 물건을 연남방앗간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에 지지 않은 공간이란 결국 이런 형태가 아닌가 싶다. 지역에 공간이 생기고, 지역 사람이 공간으로 모여 손님이 되기도, 판매자가 되기도 하는 공간. 다시 말해 연남방앗간 말이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29길 34
문의 010-8287-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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