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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퇴사

퇴사학교에 갔다.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를 잘 다니기 위해서.

UpdatedOn February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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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고용 시대는 끝났어요. 우린 누구나 두세 번 퇴사를 경험하는 시대에 사는 거예요.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떤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할까? 바로 ‘자생력’이다. 전 세대처럼 일관성 있는 직업 관련 전문성이 아닌, 일관된 맥락의 전문적인 힘.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이름하여 ‘퇴사학교’. 행복한 일을 찾는 어른들의 학교다. 물론, 퇴사를 권유하는 곳은 절대 아니다. 내가 수강생으로 참관한 프로그램은 ‘토요공부방’의 1월 13일 수업 ‘퇴사방지단’이다. 수강생은 15명. 제조업 해외영업·마케팅 12년 차인 그레이스 교감 선생님을 포함해 은행원, 증권사 직원, 명문대 교직원, 사회복지사, 출판사 편집자, 승무원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모여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하는 일은 무엇이고 몇 년 경력이며 회사생활은 어떤지, 고민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어지는 회사 욕… 무한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토요일 아침부터 모두가 한마음으로 웃었다. 어째서 회사들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쉽게 변하지 못하는 걸까? 

 

본격적으로 강의가 시작됐다. 우선 ‘회사, 인간관계, 직무, 적성 역량, 성장’ 다섯 가지 키워드로 직장 생활 만족도를 알아보자는 것. 세심한 강의 후 그레이스 선생님은 준비해온 만족도 그래프를 채워보자고 했다. 수강생 모두 다섯 키워드가 적힌 막대그래프를 채웠다. 직장 생활 15년 차인 수강생은 모든 그래프가 최상위였다. 그렇게 만족하는 회사에 가기까지, 그리고 살아남기까지 무얼 무기로 삼았느냐고 선생님이 물었다. “정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많은 우여곡절을 정치로 견디며 살아남았어요. 그런데 나는 살고 동료나 저보다 나이 많은 부장급을 떠나보내는 거 생각보다 별로예요.”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정치도 재능이라는 교감 선생님의 말씀에 다음 퇴사 이유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갔다. 직무, 적성과 역량, 성장 가능성 등 내부적 요인과 사회 인식, 인간관계 등 외부적 요인에 대해 분석했다. 명석하고 직관적인 분석이었다. 그리고 교감 선생님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평생 고용 시대는 끝났어요. 우린 누구나 두세 번 퇴사를 경험하는 시대에 사는 거예요.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떤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할까? 바로 ‘자생력’이다. 전 세대처럼 일관성 있는 직업 관련 전문성이 아닌, 일관된 맥락의 전문적인 힘을 기르는 것. 동시에 삶의 주기별 변화도 고려해야 하는 것. 방향을 잡고 전략적 도전과 선택을 지속하는 ‘자생력’을 기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 가장 좋은 환경이 바로 직장 생활이다. 즉, 업무 경험과 시스템 관리 방식, 인맥 확대와 정기적인 소득이 자생력의 영양분이라는 사실. 그리고 교감 선생님은 퇴사 후 선택지 ‘이직, 전직, 부서 이동, 학업, 휴직, 창업’에 대해 장단점을 따져 설명했고 곧 수업이 끝났다. 

 

만약 퇴사를 생각하고 있다면, 적성과 재능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퇴사 후 무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알더라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퇴사학교 입학을 권하고 싶다.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준비된 수업을 듣고 다양한 분야,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모호하게 인지했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눈앞에서 명확히 보이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다. 

 

퇴사학교의 정규 프로그램으로는 창업과 창작, 창직을 돕는 ‘퇴사준비’ 퇴사 개론과 인생 가치론, 직무 찾기, 이직을 돕는 ‘진로 찾기’와 일 잘하기, 핵심 스킬을 알려주는 ‘역량 강화’가 있다. 이외에도 특별 프로그램으로 수요퇴사회, 토요공부방, 원데이 퇴사캠프, 기업 교육이 마련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퇴사학교 홈페이지(t-school.kr)에서 확인하면 된다. 수업을 마치고 옛 건물과 반짝이는 빌딩이 즐비한 시청역 근처를 걸었다. ‘나는 뭘 하려고 태어났을까?’ 나이 서른에 주책맞은 고민을 꽤 진지하게 하며, 청승 좀 떨면 어떤가?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어디든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으로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택시를 잡았다. 눈이 내렸고 몹시 추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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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EST EDITOR 김민수
PHOTOGRAPHY 이수강

2018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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