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AGENDA MORE+

화성 소년의 시

저 먼 우주의 화성에서 천사 같은 소년이 찾아왔다. 에이사 버터필드라는 요즘 제일 잘나가는 ‘어린 왕자’가 말이다.

UpdatedOn April 28, 2017

3 / 10
/upload/arena/article/201704/thumb/34354-226585-sample.jpg

소년과 소녀의 만남.

소년과 소녀의 만남.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던 한 천사가 있었다. 그는 한 여인의 고독한 인생살이를 바라보며 동반자가 되기로 한다. 그렇게 천사는 인간이 되었다.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 내용 중 한 부분이다. 지금 굳이 20년도 넘은 이 클래식을 언급하느냐고? 이제 이야기할 영화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가 이 작품의 장면을 인용함과 동시에 모티브를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목만 언뜻 보면 영화는 마치 SF 장르를 떠올리게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영화 역사가 고릿적부터 우주의 두려운 그 어떤 것으로 다루어온 화성에서 최초로 태어난 아이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결코 이 영화를 우주 괴물이 등장한다거나, 어떤 위협적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긴장감을 조성하는 등 장르적 클리셰를 차용하지 않는다. 단지 그냥 그곳에서 태어나 16년 동안 살았고, 지구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한 소녀를 그리워하는 소년의 동화 같은 스토리를 풀어낼 뿐이다. 마치 천사 다니엘이 여인 마리온을 위해 지상에 귀화한 순간의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말이다.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는 그래서 SF의 탈을 쓴 순수한 성장 동화가 된다. 소년은 소녀를 그리워하고, 동시에 지구에 존재할 자신의 아버지를 애타게 찾는다. 또 그 소녀는 소년을 되레 동경하고 지구라는 곳에서 자신만 버려졌다는 소외와 고독을 느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데 영화는 절대 섣부른 긴장감을 생성하지 않는다. 이는 관객의 반응을 엇갈리게 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심심하다며 투덜댈 수도 있고, 다른 이는 담백하다며 칭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후자의 반응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을 것이다. 순수, 경쾌, 발랄의 삼박자가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상당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 영화적 담백을 더욱 영화적으로 증폭시키는 데는 소년 역을 맡은 스무 살짜리 미소년 에이사 버터필드가 큰 몫을 한다. 아마 그의 전작 <일만명의 성자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접한 이라면 그의 존재감이 얼마나 싱그러운지 십분 이해할 것이다.  

소년과 소녀의 일탈.

소년과 소녀의 일탈.

소년과 소녀의 일탈.

화성인 가드너 지구에 오다.

화성인 가드너 지구에 오다.

화성인 가드너 지구에 오다.

만일 당신이 이 영화를 근래 극장가에 심심찮게 출몰하는 슈퍼히어로 장르로 오산했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단지 ‘스페이스’라는 제목만으로 말이다.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반복적으로 낮추는 이유는 오해가 낳을 불신이 싫기 때문이며, 또 괜찮은 영화 한 편이 그릇된 인지로 인해 사장될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또 감독 피터 첼섬은 언제나 동화 같은 영화를 만들어온 인물이기에 더욱 그렇다. 전작 <꾸뻬씨의 행복여행>이 그랬듯,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 역시 살아가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시금 빔 벤더스의 철학적 사유가 그윽한 <베를린 천사의 시>로 돌아가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를 대입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발생한다. 그건 인간이 되어 그녀의 곁에 갈까 말까 고민하며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는 천사의 시점(영화에서도 직접적으로 인용되는 장면)이 그 흥미의 기원이다. 그 장면이 종종 등장하며 우리는 화성에서 줄곧 나고 자란 주인공 가드너의 시선을 다니엘의 눈으로 전치하게 된다. 이때부터 가드너의 모든 행위가 쉬이 이해된다.

이렇게 인간이 된 천사 다니엘은 영구한 인류 역사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지만, 지구 중력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드너는 다시금 화성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영화 말미에 가드너는 이렇게 말한다. “집만큼 좋은 곳은 없다”고. 어쩌면 피터 첼섬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이 대사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소년이 지구에 도착한 순간부터 끊임없이 물었던 “지구에서 제일 좋은 것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그것이니까.

MUST SEE

분노

분노

분노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밤의 해변에서 혼자

  • 분노

    감독 이상일 | 출연 와타나베 켄 | 개봉 3월 30일

    이상일은 영화를 꽤 준수하게 만드는 일본 영화계의 스타다. 초기 <69 식스티 나인> <스크랩 헤븐>의 느낌보다는 <악인>의 음울함이 이 영화를 휘감는다. 근래 일본 영화들이 내뿜는 범죄 영화의 향기가 상당히 좋다. 이 영화도 그렇다.

  •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감독 홍상수 | 출연 김민희 | 개봉 3월 23일

    홍상수 영화니까 볼 사람은 볼 거다. 여기에 김민희가 여배우이니 온갖 옐로 뉴스가 난무할 거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사랑한다고 했고, 그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근래 홍상수 영화에 비해 더 괜찮아진 건 부정할 수 없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프리즌

프리즌

프리즌

  •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감독 루퍼트 샌더스 | 출연 스칼릿 조핸슨 | 개봉 3월 29일

    어쩌면 예고편에서 보여준 몇 개의 인상적 장면이 전부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를 열광시켰던 ‘공각기동대’인 걸. 게다가 할리우드가 돈 좀 들였으니 볼 만은 하겠지.

  • 프리즌

    감독 나현 | 출연 한석규, 김래원 | 개봉 3월 23일

    요즘 TV에서 <피고인>과 <보이스>를 연달아 봤더니 피곤하다. 어쩌면 그런 시리즈의 극장판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구미가 당기기도 하지만 스크린에서 한석규는 빛을 바랬고, 김래원은 글쎄 잘 모르겠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이주영

2017년 04월호

MOST POPULAR

  • 1
    끝의 시작
  • 2
    이희준, "제가 연기하는 작품으로 사람들이 조금 더 살 만해졌으면 좋겠어요."
  • 3
    이희준이 할 수 있는 일
  • 4
    두피는 안녕한가요?
  • 5
    소수빈, "좋은 가수는 사람들의 마음에 발자국을 남길 줄 알아야 돼요"

RELATED STORIES

  • LIFE

    HAND IN HAND

    새카만 밤, 그의 곁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물건 둘.

  • INTERVIEW

    스튜디오 픽트는 호기심을 만든다

    스튜디오 픽트에겐 호기심이 주된 재료다. 할머니댁에서 보던 자개장, 이미 현대 생활과 멀어진 바로 그 ‘자개’를 해체해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공예를 탐구하고 실험적인 과정을 거쳐 현대적인 오브제를 만들고자 하는 두 작가의 호기심이 그 시작이었다.

  • INTERVIEW

    윤라희는 경계를 넘는다

    색색의 아크릴로 만든, 용도를 알지 못할 물건들. 윤라희는 조각도 설치도 도자도 그 무엇도 아닌 것들을 공예의 범주 밖에 있는 산업적인 재료로 완성한다.

  • FASHION

    EARLY SPRING

    어쩌다 하루는 벌써 봄 같기도 해서, 조금 이르게 봄옷을 꺼냈다.

  • INTERVIEW

    윤상혁은 충돌을 빚는다

    투박한 듯하지만 섬세하고, 무심한 듯하지만 정교하다. 손이 가는 대로 흙을 빚는 것 같지만 어디서 멈춰야 할지 세심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상반된 두 가지 심성이 충돌해 윤상혁의 작품이 된다.

MORE FROM ARENA

  • LIFE

    파네라이의 거북선

    파네라이가 시티 에디션의 일환으로 ‘서울 스페셜 에디션’을 공개했다. 한국을 모티브로 선보인 최초의 결과물이다.

  • INTERVIEW

    일러스트레이터 맥스 달튼

    한 편의 영화를 어쩜 그리 잘 그릴까? 일러스트 대가 맥스 달튼에게 물었다.

  • FASHION

    배우 문상민의 시간

    하루에 아홉 번, 그와 나란히 마주 앉은 꿈을 꾸었다.

  • FILM

    월클돌 '매드몬스터'의 모든 것!

  • FASHION

    A HOLIDAY

    한가로운 휴일 오후처럼 느긋하고 유쾌한 아르마니 익스체인지의 봄.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