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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만 있던 일요일

‘오벌’과 ‘AP 숍’에는 되도록 해가 쨍한 오후에 향하는 것이 좋다. 볕이 넘실거리는 공간에 서서 정물 같은 풍경을 오랫동안 바라보기 좋으니까.

UpdatedOn March 1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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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al

주소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 29길 48-29

오벌은 문구를 판매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수랑이 운영하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문을 연다. 오벌은 외진 곳에 의도적으로 숨어 있다. 너무나 평범해서 한 번 보고 뒤도는 순간 바로 잊어버리는, 인상이 흐릿한 어느 건물에 둥지를 틀고 있다. 게다가 건물 1층도 아닌 옥탑 공간을 사용한다. 옥탑에 닿으려면 당연하지만, 부지런하게 계단을 타야 한다. 공간은 처음부터 ‘짠’ 열리지 않고, 계단을 오르며 서서히 열린다. 그렇게 문을 열고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볕이 한가득 넘실거리는 풍경을 마주한다. 전체적인 구조는 유리 온실에서 차용했다.

아침이면 조밀한 빛을 한껏 들이고 밤이면 칠흑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형태. 때문에 오벌은 좁게는 하루, 넓게는 계절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서로 다른 요소가 부딪치며 다양한 심상을 만드는 것도 이곳의 큰 특징이다. 이를테면 각기 다른 색을 칠한 벽이나 전구와 소켓 사이 유착이 생겨 일정한 시간차로 점멸하는 테이블 램프 등. 오벌에서는 작은 물건을 하나하나 관찰하기보다 물건을 담고 있는 공간을 멀찍이 서서 바라보길 권하고 싶다. 헐렁하고 느슨하게 보아야 공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오벌에서 인테리어 훔치기

1 캔버스나 화판을 고정하는 본래 이젤의 쓰임과 달리 다양한 사물을 비치하는 집기로 활용하고 있다.
2 김수랑은 과거에 생산하여 현재는 찾아보기 힘든 빈티지 연필을 수집한다. 다양한 기능과 형태를 띠며, 소재의 정서를 단단히 품고 있는 것으로 채집한다.
3 직접 제작한 테이블 상판으로 팔레트 모양이다. 하부 구조물로부터 자유롭게 분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4 시애틀 기반의 디자인 스튜디오 레이디스&젠틀맨 스튜디오(Ladies & Gentlemen Studio)에서 만든 차임 모빌.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면 차임이 부딪치며 경쾌한 소리를 낸다.
5 조명 디자이너 고프레도 레자니(Goffredo Reggiani)가 1960년대 디자인한 테이블 램프. 바랜 듯 푸르스름한 도색과 둥글고 귀여운 갓이 특징이다.
6 블레스(Bless)에서 출시한 멀티 어댑터. 2005년 출시한 ‘N°26 케이블 주얼리(Cable Jewellery)’ 시리즈 중 하나.
7 공간 구성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철제 구조물은 온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했다.
8 연필 상자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미닫이 형태의 캐비닛.
9 마사나오 히라야마(Masanao Hirayama)의 드로잉 작품 ‘4183’. 2013년 클리어 에디션 & 갤러리(Clear Edition & Gallery)에서 열린 전시에서 구입했다.
10 1980~1990년대 중·고등학생들이 흔히 사용하던 무늬목 책상.
11 가구 디자이너 마르티노 감페르(Martino Gamper)가 프렌즈 오브 아널드 서커스(Friends of Arnold Circu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아널드 서커스(Arnold Circus)’ 스툴.
12 직접 만든 유리 상판. 매끄러운 유리에 타공 디테일을 추가해 재미를 주었다.
13 수돗가는 김수랑이 공간을 설계할 때부터 구상한 요소다. 시멘트를 양생해 단을 올렸고 수도꼭지를 틀면 실제로 물이 쏟아진다.
14 천장이 유리로 된 공간의 특성상 천장 조명 대신 벽 조명과 다양한 탁상 램프를 곳곳에 활용했다.
15 벽면에 종이 설치물을 두었다. 각기 다른 소재의 층(Layer)이 겹치며 다양한 심상을 불러일으킬 의도로 제작했다.
16 토마도(Tomado)에서 출시한 선반 시스템. 협소한 공간에는 부피가 큰 진열장보다 재배치가 용이하면서 벽 자체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선반 시스템이 적합하다.
17 1960년대 후반 가구 디자이너 잔카를로 피레티(Giancarlo Piretti)가 디자인한 책상 필라(Pila)와 의자 플란톤(Plan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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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Shop

주소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5길 9

AP 숍은 판화가 최경주가 만든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고 트럼펫 연주자 이동열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AP 숍을 찾으려면 정확하게 소공동 양복점 거리를 통과해야 한다. 폐점한 상점들과 그나마 몇 남지 않은 양복점 사이를 헤매다 보면 AP 숍에 닿는다. 누구든 이곳에 도착한 사람은 대뜸 이렇게 묻지 않을까? 도대체 왜 이런 장소에 가게를 차렸나요? 장소에 대한 의문은 낡은 문을 열고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말끔하게 해소된다.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한낮의 햇빛이 크림색 벽을 밝히는 풍경, 최경주가 만든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경쾌한 리듬을 만드는 장면. 소공동에 깔린 고요함 또한 이 공간과 꼭 알맞게 조우한다. 한편 이곳에 놓인 물건은 모두 최경주 혹은 이동열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애벌레처럼 생긴 거치대는 최경주의 에칭 작품 ‘율동’에서 모티브를 따와 디자인한 것이고 유리창 앞에 서 있는 커다란 스피커는 이동열이 진행하는 연주회에서 사용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AP 숍에서는 무엇이든 튀거나 어색한 것이 없다. 오벌의 공간이 요소와 요소의 마찰로 이루어진다면 이곳은 요소와 요소의 만남으로 완성된다.
 

AP 숍에서 인테리어 훔치기

1 티타임을 위한 도구들. 자세히 보면 똑같이 생긴 물건이 단 하나도 없다. 판화 작업의 특성상 같은 제품도 조금씩 다르다. 규격, 색감, 바느질 마감 상태가 모두 제각각이다. 티 매트와 코스터 각각 2만5천원, 7천원.
2 거인의 손바닥 같은 거대한 야자나무가 공간에 생기를 더한다.
3 무척 단단해 보이는 의자는 사실 방산시장에서 판매하는 산업용 스펀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제작한 것이다.
4 1960년대 지은 오래된 상가 건물이지만 보존 상태가 훌륭하다. 특히 이중창을 새로 설치하고 난 뒤에도 이전에 있던 낡은 창의 골조를 그대로 보존했다는 점에서 건물에 대한 주인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5 AP 숍의 문을 열기 전, 이동열은 피아니스트 얀 요한슨(Jan Johansson)의 앨범 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다. 앨범을 재생했을 때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오디오를 신중하게 고른 뒤 AP 숍 창가에 진열했다.
6 최경주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테이블과 의자. 한주원, 김세중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COM’에서 제작했다.
7 최경주의 에칭 작품 ‘율동’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한 거치대. 가방을 걸어두는 용도로 활용한다.
8 면과 나일론 혼방 소재로 제작한 커튼. 가볍고 얇아 바람이 들면 커튼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움직인다.
9 그래픽 디자이너 양민영과 협업해 만든 실험실 코트. 스와치 서비스(Swatch Servic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했다. 양민영이 일차적으로 옷의 틀을 만들고 최경주가 실크 스크린으로 주머니에 드로잉을 인쇄했다. 12만원.
10 최경주의 유화 작품. 일본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 미야코지마 섬을 여행했을 때 남긴 드로잉을 유화로 다시 작업했다.
11 화분의 위치를 옮기고 난 후 바닥에 남은 흔적을 여러 가지 형상으로 표현한 작품. 거실에서 러그로 사용할 수 있다. 88만원.
12 ⑪의 드로잉을 스카프에도 적용했다. 12만원.
13 ‘율동’ 시리즈 중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리듬을 시각적인 선으로 표현했다. 33만원.
14 찰흙과 비슷한 질감의 스컬피(Sculpey)로 제작한 화병. 가격미정.
15 갖가지 물건을 진열하는 매대는 무릎 높이 정도로 직접 제작했다. ‘율동’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것으로 손잡이 모양이 독특하다. 소재는 은은한 붉은빛이 도는 체리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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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GUEST EDITOR 전여울
PHOTOGRAPHY 이수강, 현경준

201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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