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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NA talks to... 김호철

영원한 승자는 없다. 이 사실을 증명한 김호철은 이제 승자의 입장에 서 있다. 승자의 자리가 익숙한 그에게 정상에서 내려오는 일은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김호철의 배구를 보려고 다시 배구장을 찾은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김호철은 영원한 승자라고. <br><br>[2007년 2월호]

UpdatedOn January 18, 2007

Editor 정석헌

이런, 2라운드에서도 삼성화재에 지고 말았다. 인터뷰를 앞둔 시점에서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경기도 용인의 적막한 산중, 천혜의 요새에 위치한 현대캐피탈 배구단 체육관에서 만난 김호철은 조금 피곤해 보였다. 마침 녹음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전술 훈련에 나선 선수들의 기합 소리가 체육관에 울려퍼졌고, 김호철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배구는 철저한 ‘조직 스포츠’다. 누구 한두 명으로 완성되는 플레이는 애초에 없다. 상대방에게서 날아온 공을 기본적으로 하나(리시브)-둘(토스)-셋(스파이크)의 과정을 거쳐 상대 진영에 넘긴다. 셋까지 가기 위해선 하나와 둘의 과정이 매끄러워야 하며, 코트에 선 여섯 명이 정해진 역할을 다하고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 하나와 둘이 매끄럽지 못하면 셋의 위력은 기대할 수 없다. 여섯이 모여 하나와 둘을 만드는 과정을 조율하는 것이 바로 감독의 일이다. 끔찍했던 삼성화재의 78연승을 저지했고, 프로 스포츠의 자존심 문제였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으며, 뿔뿔이 흩어졌던 팬들을 다시 배구장으로 모이게 한 김호철 감독이 강조하는 것 역시 그런 ‘기본’이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인 것 같다. 침체된 팀을 떠맡은 뒤 3년 안에 우승하겠다는 것도, 아시안게임 2연패도, 우리와 만나기로 한 시간에 정확히 나타난 것도 그렇고.
어떤 확신과 자신감이 있을 때 약속을 하니까. 확신과 자신감이 있으면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데 망설임이 없어진다. 일단 목표를 세우면 내가 가진 모든 걸, 열정이든 능력이든 다 투자하는 거다. 약속을 지키게 된 건 노력의 대가일 수도, 그저 운이 따르는 걸 수도 있다.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난 이제껏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삼성의 78연승 저지, 극적인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 덕분에 배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항상 당신이 있었다.
기록은 깨지려고 있는 거다. 누가 깨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삼성이 나한테 기회를 준 것 같다. 삼성의 기록을 깼지만 삼성이 없었으면 그런 좋은 기회는 없었을 거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금메달을 딴 아시안게임도 나보다는 선수들이 중심이었다. 4대 구기 종목이 무너진 상황에서 나보다는 선수들이 더 이를 악물고 뛴 것 같다. 병역 혜택과 상관없이, 노장과 신진을 적절하게 선발한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아시안게임 전에 세계선수권에서 참패했는데, 그것도 대표선수들에게는 큰 자극이었을 거다. 음, 난 그때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을 뿐이다.

사실 어지간한 선수들보다 인기가 더 많은 감독이다.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그거다.(웃음) 운동할 때도 감독할 때도 인기가 많았다. 고생은 선수들이 다 하는데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너무 많이 받는 것 같아 미안하다. 나보다는 잘생기고 실력 있는 선수들이 인기와 유명세를 누려야 한다.

배구 선수들 중에 특히 미남이 많다.
배구는 몸싸움을 하는 경기가 아니다. 스파이크를 때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온순한 스포츠다. 그래서 선수들 성격 자체가 거칠지 않다. 너무 점잖은 스포츠다 보니까 얼굴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다.

한국 배구의 부흥, V리그의 흥행을 위해 재밌는 배구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가 힘들지 않나?
지난해 우승한 뒤 한국 배구 발전을 위해 관중들이 좋아하는 배구를 하겠다는 소감을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해야 선수들이 코트 위에서 즐겁고 재밌게 배구를 하고, 그러면 제 실력을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요즘 네 팀이 혼전 양상이어서 팬들은 재밌을 거다. ‘이제 누가 현대를 막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현대가 다른 팀보다 준비가 덜 되어 있었고, 대한항공도 완벽하게 부활했다. LIG만 좀 더 분발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4강 구도, 네 팀이 서로 물고 물리는 재밌는 경기를 할 것이다. 내가 처음 부임했을 때 삼성을 견제할 수 있는 대등한 팀을 만드는 게 첫 과제였다. 그래서 선수들을 혹독하게 조련했고, 선수들도 잘 따라왔으며, 삼성의 벽을 넘어 우승까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다른 팀에게도 부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셈이다.

문제는 재밌는 배구를 하면서 또 이기는 배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본 적은 없나?
재밌는 배구를 하다 보면 승리는 따르게 마련이다. 재밌는 배구와 이기는 배구는 다른 것이 아니다. 선수들에게도 즐기면서 할 것을 누차 강조한다. 하지만 승패는 어려운 문제다. 선수들이 배구를 즐기면서도 이길 수 있는 근성이나 승부욕을 잃지 않도록 묘안을 여전히 찾고 있다.

야구 감독 중에는 5회 이전에 번트를 대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경우도 있다. 혹시 전술적으로 팬들을 위한 배려가 있나?
난 과감한 걸 좋아한다. 시도하는 걸 즐기고 또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편이다. 안정적으로 시합하는 걸 원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능력으로 경기를 치를 수밖에 없다. 그 이상,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걸 하려면 과감해야 한다.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승패에 관계없이.

언론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현대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당신이 보기에도 심각한 상황인가?
당장 어려운 점이 많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팀이라고 본다. 6개월 정도 대표팀 외도를 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선수와 차출된 선수들 간의 호흡이 원활하지 못하다. 다른 팀 용병들은 3, 4개월 전에 데려와서 훈련하고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달 전에 들어와 나하고 본 지는 일주일된 용병을 데리고 경기하다 보니 생각만큼의 플레이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꼭 회복될 것이다. 사실, 내 예상보다는 그래도 괜찮은 시합을 하고 있다. 선수들이 많이 힘들 거다. 벌써 지난 1년 동안 진 것만큼 졌으니까. 초조해지면 안 된다. 서두르면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현대가 못한다기보다는 다른 팀이 잘한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그렇다. 현대를 이길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온 팀과 준비가 덜 된 우리 팀의 경기 결과는 자명한 거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고.

각 팀의 용병 선수들이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대한항공이나 삼성은 용병이 거의 50%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나 LIG는 20, 30% 정도? 용병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 위험이 따르는 법이다. 난 우리 팀을 한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팀 컬러로 만들고 싶다.

용병 선수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두 시즌째인 루니는 어떤가?

올해는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던 지난해와 상황이 다르다. 현재의 루니는 60%밖에 안 된다. 지금 우리 팀의 가장 큰 핸디캡이 그거다. 요즘 다른 용병들이 괴물 소리까지 들을 만큼 대단하지만, 내 팀 선수여서가 아니라 팀 공헌도를 비롯해 모든 면에서 루니가 제일 나은 용병이 아닐까 싶다. 무슨 말인지 나중에 알게 될 거다.

후인정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 것 같다. 하지만 팀의 에이스로서 LIG의 이경수, 삼성의 신진식에 비해 다소 미흡하지 않나?
우리 팀의 노장이고 리더다. 하지만 노장이라 해서 모두 팀을 이끌 수 있는 건 아니다. 3년 전 내가 이곳에 왔을 때 몸이 안 좋아서 은퇴하려고 했던 선수가 새로운 장을 열었고, 배구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동기 부여는 내가 했지만 본인이 그만큼 노력했다는 얘기다. 결국 서른넷인데도 팀에서 가장 필요한 선수가 되었다.

박철우의 성장 가능성도 궁금하다.
나이는 나이다. 완성된 선수가 아니다. 1, 2년 후에는 한국의 라이트를 짊어질 선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무리 박철우, 박철우 해도 지금 당장 평가하는 건 너무 조급한 듯싶다. 10년 이상을 쓸 수 있는 선수를 만들어놓지 않고 혹사시켜서는 안 된다.

데이터 배구를 지향하기로 유명한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이터는 무엇인가?
우리는 높이의 배구다. 그런 우리가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게 블로킹이다.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블로킹을 갖고 시합을 하는데, 상대의 공격 루트와 공격수의 습성을 잘 알아야 가능하다. 블로킹을 잘하다 보면 수비도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상대의 공격과 수비 데이터를 분석하면 거기에 대응하는 연습 스케줄도 나온다.

보는 입장에서 삼성의 77연승은 악몽이었다. 연승이 저지되고 김세진도 은퇴했지만, 삼성은 여전히 위력적인 팀이다.
부자는 망해도 3년 간다는데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한 번 졌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는다. 삼성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팀이 아니다. 9년 동안 우승하면서 다져진 조직력, 선수들의 카리스마, 이기는 팀으로서의 자존심이 대단한 팀이다. 이미 얘기한 적이 있지만, 올해는 이기기 더 힘들 것이다. 작년에는 삼성을 이겨야 한다는 애절함이 있었지만 이제 반대 입장이고, 정신력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삼성은 시합하기 참 어려운 팀이다.

선수 구성만 봐서는 잘 모르겠다. 현대가 삼성보다 부족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우리는 팀을 계속 만들어가야 한다. 삼성은 좋은 선수들, 스타가 많은 팀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기본적인 것, 기초가 잘돼 있는 팀이다. 기초 공사가 잘돼 있는 팀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 팀 선수들의 네임밸류나 하드웨어는 삼성보다 훨씬 좋지만, 실은 기본이 안 된 선수들이 많다. 팬들이 아쉬워하는 점도 그런 부분이다.

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1, 2라운드에서 삼성에 내리 졌다. 그래서 3라운드가 더 기대된다.
지고 못 사는 사람? 글쎄, 이제 많이 변한 것 같다. 삼성을 이기기 전까지는 정말 승부욕에 불탔는데…. 즐기는 배구를 선언한 뒤 부드러운 면을 보이려 애쓰는데, 우리 선수들한테도 그렇고 팬들한테도 그렇고, 나와 잘 맞지 않고 어색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고민이다. 이기기 위해 선수들을 더 혹독하게 조련하고 몰아붙이면 내가 한 말과 앞뒤가 맞지 않고…. 어차피 이번에는 마지막까지 가야 한다. 최후의 승자이고 싶다.

신치용 감독과 자주 비교되는 게 부담스럽진 않나?
알려진 것만큼 우리가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니다. 경기장에서 보는 횟수가 더 많다. 서로 너무 바쁘기도 하고, 스타일도 정반대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합의를 이루면 잘 맞출 수 있는 친구다. 신 감독이 있어야 삼성이 있고, 삼성이 있어야 현대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구도가 있어서 모두가 빛을 보는 게 아닐까.

경기 중 속을 감추기보다는 화를 내든 칭찬을 하든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다. 그런 것들이 팀 컬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
그래서 걱정하는 팬이 많다. 그런데 시합 중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다혈질에 성질 급하고, 선수들을 무섭게 몰아붙인다고 하는데 사실, 알고 보면 나도 부드러운 사람이다. 다만 두 가지 일을 잘 못한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걸 못한다. 배구를 시작하면 다른 것들은 재미가 없다. 그 좋아하는 골프도. 어떻게 보면 좀 모자란 거다. 너무 집중, 집착하다 보니 오버 액션도 나오고 선수들을 다그치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현대의 팀 컬러, 선수들의 성격을 볼 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의자에 앉아서 점잔만 뺄 게 아니라 선수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이 팬들에게 또 다른 기쁨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 기억으로는 앉아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하하하.

야구에 선동렬, 축구에 차범근이 있다면 배구에는 김호철이 있다. 스타는 스타 감독이 되기 힘들다는 말을 극복해야 하는 공동운명체랄까?
사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었다. 배구를 좋아하니까. 나는 어쩌다 배구 감독하는 게 아니다. 후배들에게 내가 아는 만큼 가르쳐주고, 그걸 즐거움으로 알고 살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가르친다는 건 기초, 기본을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그 선수의 능력에 맞게 가르쳐야 하는데 스타 출신들은 자기가 해온 게 있어서 문제다. 스타들은 ‘그것도 못해?’라는 생각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현역 시절의 자신을 먼저 생각하면 안 된다.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남한테 대우만 받고 살았다는 것도 문제다. 가만히 있어도 전부 와서 문제를 해결해주고 도와줘 스타가 되었다는 거다. 그런데 감독은 누가 도와줘서 될 자리가 아니다. 스스로 나서고 해결해야 하는 자리다. 그리고 스타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저건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타 출신이 아닌 감독은 스타의 자리를 누리지 못한 패배 의식이 강한 승부욕으로 표출되고,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선수들을 가르친다. 노력하는 면에서는 스타 출신이 아닌 감독들에게 배워야 한다. 스타라는 건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다. 거기에 노력까지 더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당신이 코트 위를 호령하던 70, 80년대에 비해 요즘 선수들은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배고픈 배구를 했다. 지금 밥 못 먹는 선수는 없다. 요즘 그런 이야기하면 웃을 거다. 선수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얼마나 잘 뽑아낼 수 있느냐가 지도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일 것이다. 배고픈 게 없다는 건 정신력이 약하다는 얘기다. 결국 그런 정신력을 어떻게 하나된 힘, 즉 조직력으로 만들어 시합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냥 3, 4일 굶으라고 하면 누가 굶겠는가. 우리야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했지만.

경기 전,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주문은 무엇인가? 조직력? 아니면 희생정신?
희생을 요구한다. 이겨야 하는 시합이란 걸 주지시키긴 해도 승부처에서 이겨라, 이겨야 된다는 이야기는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다. 아무리 실력 좋고 유명한 선수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꼴을 보지 못한다. 벤치에 앉혀둔다.

김세진이 생각보다 빨리 은퇴했다. 그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 내놔도 손색없는 훌륭한 선수였다. 아쉽다. 한국 배구의 대들보였고, 평생을 배구에 바친 선수가 운동을 끝내고 나서도 충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없는 게 아쉽다. 김세진 같은 뛰어난 선수가 아무 걱정 없이 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당신은 이탈리아에서 선진 배구를 체득한 유경험자다. 협회나 대표팀 관계자에게 한국 배구를 위해 조언을 한다면?
금메달을 따겠다, 어디서 우승하겠다, 이런 건 없다. 난 요즘 대표팀 운영 방식에 회의를 느끼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장기 계획도 없고, 그때그때 맞춰서 선수를 선발해 감독에게 모든 짐을 지운 뒤 이기고 오라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나? 중장기 플랜을 세우고, 유망주들을 어릴 때부터 보호하고 집중적으로 훈련시킨 뒤 결과를 기다리는 게 순리인 것을….

아들은 골프를 치고, 딸은 배구를 한다. 자식들이 부모의 영향을 받는 걸 지켜보는 일은 어떤가?
자식들 가르치기가 제일 어렵다는 말이 맞다. 아이들이 크고 대화를 나눠보니, 나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보는 것 같았다.(웃음) 내 그늘에 가려 하고 싶은 걸 제대로 못하는 거다. 인터뷰를 해도 아빠 이야기가 먼저고, 누구 딸, 누구 아들이어서 이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많이 부담스러울 거다. 그래서 가능하면 앞에 나서지 않으려고 애쓴다. 자식 가진 부모 마음은 똑같다. 내 아이들을 통해 우리 선수들과 선수 부모들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당신이 처음 배구와 인연을 맺었을 때를 기억하나?
원래 마라톤 선수였다. 육상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코치나 다름없었다. 그때 다니던 초등학교에 배구부가 생기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공 주우러 열심히 따라다녔고, 그러다 배구가 좋아졌다. 그런데 괜히 한 것 같다.(웃음)

40년 가까이 배구 곁에 있었다. 배구를 그만두려고 했을 만큼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
두어 번 있었다. 시골에서 운동하다가 스카우트되어 서울로 왔는데, 공격수인 나를 키가 작다는 이유로 세터로 바꿔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배구를 그만둘까 고민했다. 1975년 처음 대표팀에 선발되어 태릉선수촌에 갔는데 너무 많이 두들겨 맞았다. 운동도 안 시키고 볼보이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태릉선수촌에서 도망을 친 적도 있다. 태극기 달아줬는데 도망간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당신의 전성기는 언제였다고 생각하나?
선수로 치면 1970년대 후반, 1980년대가 아닐까. 세계선수권 4위, 아시안게임 우승, 유니버시아드 우승할 그 당시 말이다. 감독으로서는….

바로 지금이다!
난 행운아다. 좋은 팀에서 좋은 선수들을 만났고, 좋은 회사가 뒷받침하고 있으니. 삼성도 이겼고 아시안게임에서도 우승했고, 이제 모든 걸 후배들이 할 수 있게끔 뒤에서 밀어주는 게 내 역할이 아닐까 싶다. 사실 오늘(1월 8일) 오전에 대표팀 감독 재선임 문제로 모임이 있었다. 하기 싫어서 일단 사임했다. 사생활도 없고 너무 피곤해서. 협회에서는 말리는데, 수일 내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김호철로 인한 동기 부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이제 후배들의 뒤에서 한국 배구를 지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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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정석헌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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