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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권혁수

뒤늦게 호박고구마 영상을 보고, 소속사 없이 활동 중인 권혁수를 수소문했다. 그는 호박고구마보다 <SNL>보다 더 유쾌한 남자였다.

UpdatedOn August 2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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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프린트 셔츠는 웩(Wack), 팬츠는 S.T.듀퐁 제품.

분홍색 프린트 셔츠는 웩(Wack), 팬츠는 S.T.듀퐁 제품.

원래 이렇게 웃기나?
보이는 바와 같이 밝고 긍정적이다. 워낙 활동적이라 어려서는 소위 말하는 ‘깝치’는 친구였다. 남중 남고에서 제일 수다쟁이에 리드 잘하는 뚱보 반장이었다고나 할까?

지금은 날씬해 보여서 뚱뚱한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
고등학교 때 100kg이 넘었다. 덩치가 어마어마했지. 나를 씨름부원으로 착각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씨름부원만큼 먹었거든. 또 주로 매점에서 시간을 보내니까 씨름부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공놀이는 안 했다. 칼로리 수집하는 것 빼고는 다른 것은 안 했다.

그때 꿈꾼 미래는 뭐였나?
뚱뚱한 게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멋진 영화배우를 보면서 나도 배우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는 반대했지만 내 마음은 확고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공부는 못했지만 책은 좀 읽었거든. 어려서부터 희곡을 주로 읽었다.

독특하다. 학창 시절에 소설은 몰라도 희곡 읽는 학생은 드물다.
내 꿈을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셨다. 다독가라 정말 많이 읽으신다. 항상 책을 사다 주셨다. 어린 나이에 체호프나 셰익스피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인물의 말하는 방식을 주로 봤다.

사실 연기하는 데는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연기하기 힘든 적은 없었다. 책을 읽고 분석하는 정도의 돈만 있으면 되니까. 제대 후 등록금 마련이 더 힘들었다. 정말 ‘알바’란 알바는 다 해본 것 같다. 경복궁에서 백성도 했다.

경복궁 백성은 뭔가?
경복궁에서 외국인 상대로 하는 퍼포먼스다. 누가 봐도 내가 왕족처럼 생긴 건 아니지 않나? 백정까지는 아니고, 평범한 천민을 연기했다. 아이들 생일 파티 진행도 해보고, 명동에서 티셔츠도 팔았다. 극장 알바도 했고. 호프집 서빙은 기본이었다. 일단 요식업 알바는 거의 다 해봤다고 봐야지.

대단하다. 대학 등록금이 한창 올라 본인이 직접 마련하기란 매우 어려웠을 텐데.
등록금이 굉장히 비쌌다. 조금만 형편이 나았으면 알바 대신 연기 공부를 했을 텐데라는 원망도 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안다. 당시 고생한 경험이 연기에 너무 필요한 요소더라.

정말 후회 없나?

없다. 그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가끔 생각하면 눈물 난다. 알바를 하다 나중에는 방법을 바꿨다. 장학금 받는 게 알바보다 많이 벌더라. 장학금 받으니까 너무 행복했다.

마지막 1년은 장학금 받아 공짜로 학교 다녔다. 똑똑해서가 아니라 고생하기 싫어서 죽을 듯이 공부했다. 그런데도 학점 못 채워서 계절학기 다녔다. 하하.
 

파란색 프린트 셔츠는 브로이어, 팬츠는 H&M 제품.

보기 드문 청년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에 나와보니까 다들 비슷한 경험과 비슷한 철없음을 겪었더라. 사실은 모두 힘들었던 거다. 그리고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런 경험이 연기에는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까?
공식은 없다. 지금 삶은 그 시절의 연장선이다. 그때 5만원 벌려고 열심히 살았다. 요즘에는 잠이 부족한 날들을 보내지만, 5만원보다 더 버니까 만족한다.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일의 목적도 명확하다. 더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나를 불러주는 게 어디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20대 후반의 고민은 없었나?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말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SNL〉에 출연해 그런 고민은 없었다. 배우 조복래가 친한 대학 동기인데, 그 친구가 술자리에 부르길래 갔다. 가보니 장진 감독님 생일 자리더라.

워낙 활달한 성격에 그만 마이크를 잡고 진행 비슷한 걸 했는데, 감독님이 유쾌하게 봐주셨다. 〈SNL〉은 조복래가 자신이 들어갈 좋은 자리였는데, 감독님께 나를 추천했다. 친구 자리 꿰차고 들어간 느낌이다. 그때는 〈SNL〉이 이렇게 크게 될 줄 몰랐다.

〈SNL〉로 데뷔했는데, 첫 생방송은 어땠나?
시즌 2부터 참여했다. 보조 출연 알바인 줄 알고, 한 10만원 예상하고 갔다. 근데 그것보다 더 주겠다고 하길래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그날 호스트는 오지호 씨였고, 안영미, 이한위, 강성진 선배들과 함께 생방송을 했다. 그리고 그들과 한 크루로 묶였다.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진 거지. 또래 친구들보다 고민을 덜하고, 행복하게 일을 시작했다. 출발이 좋았다.

뭣 모르고 시작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고충도 있었을 것이다.

맞다. 김슬기가 한창 주가 올릴 때, 〈SNL〉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새로운 고생이 시작된 거지. 내가 나름 유쾌한 성격이지만, 유세윤이나 안영미 같은 사람들과 콩트를 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정말 부담스럽다.

〈SNL〉 크루는 내 재능보다 훨씬 큰 자리였다. 풍자를 비롯해 다양한 코미디를 해야 하고, 생방송 시스템은 신인이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스로 선배들에 비해 너무 부족하고, 도태되는 걸 느꼈다. 그래서 드라마나 다른 기회를 통해 차근차근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떨까란 고민을 했다.

마음을 다잡은 계기는 뭐였나?
크루로 활동하기에는 재능이 부족했고, 생방송은 긴장되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어색했다. 특출난 선배들과 생방송을 하면서 겪는 당연한 고민이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국장님이 잡아주셨다. 내가 개그를 잘 모르고, 그래서 더 재미있게 보인다고… 내가 필요하다는 말씀이었다. 그렇게 5년을 〈SNL〉에서 보냈다. 지금은 선배들 눈만 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딱 감이 온다.

콩트 위주의 연기만 하다 보면, 아쉬움도 생기지 않을까?
호흡이 긴 이야기에서는 감정 연기나 인물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제 그 기회가 찾아온 것 같다. <운빨로맨스>를 통해 작은 배역으로 인사를 드렸다. 〈SNL〉로 처음 데뷔해서 그런지 나를 개그맨으로 보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관계자들이 내가 배우로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개그맨이 될 재능은 없다. 그저 재미있고 밝은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앞으로 문제는 하나씩 닥칠 테고, 또 풀어가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느낀 아쉬움도 있나?
주위에서는 드라마 연기에 대해 걱정하는데, 나는 〈SNL〉이 가장 걱정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완성도를 높이려다 보니, 대본을 계속 수정하고, 애드리브도 중심을 지키면서 해야 하니 어렵다. 김민교 선배나 정상훈 선배와 야외에서 촬영할 때 그들에게 부족하지 않도록 더 잘해야 하는 부분도 힘들다. 애드리브를 던지고 후회하기도 한다.

〈SNL〉 크루에 서울예대 출신 선배들이 많아서 장점도 있겠지?

선배들에게 혼나지 않았으면, 지금 수준은 도달하지 못했을 거다. 김민교 선배와 정상훈 선배는 내가 흐트러지면 바로 알려준다. 나도 못 느끼는 부분을 신경 써서 모니터링해주고, 세세한 부분까지 찾아서 알려준다. 신동엽 선배는 야외에서 콩트 할 때도 꼼꼼히 체크해준다. 워낙 섬세한 베테랑들이라서 많이 배운다.

최근에 들은 칭찬을 꼽아보자. 당연히 호박고구마겠지?
요즘 좋아! 혁수 터졌어! 이런 칭찬을 들었다. 호박고구마를 비롯해 3분 시리즈도 회자가 된 덕분이다. 운이 좋았다. 워낙 좋은 아이템이었다.

더빙극장에서 <거침없이 하이킥>을 하기로 했는데, 사실 난 <거침없이 하이킥>을 본 적이 없다. 방영 시기가 군대에서 TV 볼 시간 없이 일하던 일병 때라서, 이게 왜 웃긴지 PD 형에게 전화해서 물어봤을 정도다. 잘할 수 있을지 의심이 많았고, 폭발적인 반응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캐릭터를 모사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SNL〉에는 정성호 선배와 정이랑 선배라는 성대모사의 달인이 있다. 인터넷으로 영상을 찾아보고, 대상이 누구든 10분이면 뚝딱 성대모사를 한다. 분장도 직접 하는데, 그걸 옆에서 5년 동안 보면서 조금 배운 것 같다.

호박고구마로 화제가 돼서 <디어 마이 프렌즈>에도 출연했다.
최고의 영광이다. 대한민국 배우 중 그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나? 사람들이 다 물어본다. 현장 분위기나, 선생님과 연기하는 기분이나,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 등. 내 입장에서는 계 탄 거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내 긍정적인 성격의 기운으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두시탈출 컬투쇼>에서 김태균 선배가 나문희 선배님께 인사드린 적 있냐고 물어봐서,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인사드리고 싶다고 했는데, 10분 만에 <디어마이프렌즈> PD에게서 전화가 왔다. 촬영장으로 바로 오라고 하더라. 바쁜 스케줄 중에 우연찮게 그 시간이 딱 비었다. 마치 그 역할이 내 자리인 것처럼 말이다.

나문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배우는 그 자리가 내 자리다 생각하고 연기해야 한다고. 그 말이 앞으로 연기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 같다.

현재 소속사가 없다. 회사 없이 활동하기 힘들지 않나?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알 듯, 나는 계속 없었기 때문에 뭐가 불편한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유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 친정이 재미가 넘쳐흐르는 〈SNL〉이라서 그런 것 같다. 아침 회의 때 말도 안 되는 수위의 개그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곳이다. 신동엽, 정성호, 정상훈, 유세윤, 김준현, 김민교, 안영미, 정이랑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몇 시간 동안 회의한다고 생각해봐라. 정말 너무 웃긴다.

3년 뒤 권혁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은 배우로서의 멋이 없지만, 그때는 멋을 탑재한 배우가 되어 있을 것 같다. 배우로서도 남자로서도 많은 인생 경험을 할 테니까. 그 누구보다 내 서른넷이 너무 기대된다. 3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이고, 무슨 고민을 하며 또 얼마나 먹으며 인생을 살게 될지. 지금보다 더 인생을 즐길 것은 분명하다.

배우로서의 목표도 알려달라.

열심히 하면 믿고 봐주는 배우가 되어 있지 않을까? 요즘 말하는 대로 되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의심 안 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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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레스
STYLIST 이잎새
HAIR&MAKE-UP 채현석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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