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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꾸시노

도면의 달인, 섬세한 크로키 아티스트, 독특한 캘리그래피를 가진 남자, 손수 디자인한 동그란 안경을 쓰고, 직접 디자인한 만년필을 보유한 스튜디오 꾸시노의 구승민 대표를 만났다.

UpdatedOn May 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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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입구역 9번 출구 KFC 앞. 약속 장소로 유명한 이곳은 낮이나 밤이나 인파로 북적인다. 정성 들여 꾸민 흔적, 눈빛에서 설렘과 긴장이 묻어나는 소년 소녀 사이를 지나다 보면 내게도 생기가 전염되는 듯하다. 스튜디오 꾸시노의 구승민 대표는 그런 이유로 이 터를 떠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13년째 같은 오피스텔에서 사무실을 꾸려간다. 다소 좁은 공간이지만 값비싼 서적과 아기자기한 디자인 용품은 다른 건축 아틀리에 못지않게 방대하다. 구승민은 주택 잘 짓는 건축가로 유명하다. 샛노란색을 활용한 모아이 펜션이나 성북동 곳곳에 위치한 그의 작품들은 모두 기발하고 예쁘다. 구승민의 색이 뚜렷하다. 그의 책상 옆에는 병원에서나 볼 법한 인체 모형이 세워져 있다. 인체 해부학에 관심이 많은 그는 대학에서 인체 드로잉, 큐빅 크로키를 강의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건축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그는 수집한 만년필과 동그란 안경들을 보여주겠다며 서랍을 뒤적였다. 그를 똑 닮은 펜과 안경들이 끝없이 나타났다.
 

수집한 만년필들. 하나같이 몸통이 두꺼운 디자인이다.

수집한 만년필들. 하나같이 몸통이 두꺼운 디자인이다.

수집한 만년필들. 하나같이 몸통이 두꺼운 디자인이다.

직접 디자인한 안경으로 젠틀몬스터와 컬래버이션했다.

직접 디자인한 안경으로 젠틀몬스터와 컬래버이션했다.

직접 디자인한 안경으로 젠틀몬스터와 컬래버이션했다.

미술학도 형제

크로키 실력이 뛰어나다. 어려서부터 화실을 다닌 건가?
아니다. 형이 그림에 굉장한 소질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미술부였고, 만화도 잘 그렸다. 나 역시 미술학원을 다니고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형편이 안 됐다. 그때 누나가 건축미술과를 추천해줘 목원대 건축미술학과에 진학했다. 건축미술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형제가 만화를 굉장히 좋아했구나.
형이 만화방을 했다. 〈보물섬〉 창간호부터 집에 만화책이 가득했다. 용돈만 받으면 헌책방에서 만화책을 사왔다. 집에서는 버리라고 하니까, 형이 친구한테 돈 받고 만화책을 빌려줬다. 그때 이현세, 허영만, 이상무, 장태산, 이영배 등 만화가 이름을 전부 외웠다. 만화 속에서 살았다.

형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해부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지금 그리는 인체 드로잉도 형의 영향이다. 형이 조소과를 다닐 때 내게 해부학 책을 줬다. 해부학이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미칠 정도로 인체 드로잉을 했다. 형 영향이 컸다. 하지만 연년생이라 서먹한 관계이기도 하다. 하하.
 

인체 드로잉을 하는 그의 책상 한편에 쌓인 모형들.

인체 드로잉을 하는 그의 책상 한편에 쌓인 모형들.

인체 드로잉을 하는 그의 책상 한편에 쌓인 모형들.

해부학에 빠진 건 형 때문이었다.

해부학에 빠진 건 형 때문이었다.

해부학에 빠진 건 형 때문이었다.

그럼 연년생이니까. 대학 시절에 형과 함께 작업한 적도 있나?
형이 워낙 잘 그렸다. 학원에서 배우면서 강사를 할 정도였다. 그런 형이 너무 멋있었다. 그런데 나한테는 가르쳐주지 않더라. 하하. 형을 이겨보고 싶어서, 형보다 더 잘 그리려고 노력했다. 형은 내게 정말 큰 존재다. 지금의 해부학도 형 덕분에 시작했고, 미켈란젤로도 형 때문에 알았다. 형은 지금 학원 원장으로 일한다.

구승민 소장도 학생을 가르치고, 형도 학생을 가르친다. 형제가 선생님인 셈이네.
가르친다기보다는 애들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다. 벌써 13년이나 됐다.

예전부터 목원대는 미대가 강한 학교로 유명했다.
당시 교수님이 잘 봐주셔서 공모전에 많이 참가했다. 2학년 때부터 11개의 공모전에 응모했을 정도다. 그래 봤자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교수님 추천서를 받아 몇몇 건축사무소에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때 아람광장에 들어갔다. 김기석 선생님이 소장이셨는데, 너무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 후로 8년 동안 아람광장에 근무했다.

아람광장에서 꽤 오래 일한 편 아닌가?
2년 차에 실장이 됐다. 선배들이 전부 퇴사해서, 운이 좋았다. 또 아람광장은 도면을 굉장히 많이 그린다. 실장이 되어 도면을 직접 그리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 워낙 많이 그리다 보니 빨리 배웠다. 1년 동안 주택 도면을 마스터한 것 같다. 지금도 그 점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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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승민 대표가 그린 큐빅 크로키들.

구승민 대표가 그린 큐빅 크로키들.

은인, 아버지 그리고 선생님

우리나라 건축가는 철학적이거나 공학적이다. 좋은 현상이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조금 더 다양해지면 좋을 것 같다. 더 예술적인 건축가가 등장할 수도 있을 테고.
그런 점에서 김기석 선생님은 건축가 김수근만큼 주목받아야 할 분이다. 지금 김기석 선생님은 사라지셨는데, 굉장히 글을 잘 쓰는 건축가셨다. 시인이자 소설을 세 권 쓰신 문학가고, 소설가 최인호의 선배이기도 하다. 또 엄청난 인생사를 겪은 분이기도 하다. 옆에서 8년을 모셨는데, 선생님은 진짜 한국적인 건축가다.

그럼에도 주목받지 못했는데, 이유는 뭐였을까?
제자가 없다. 김기석류의 건축은 남아 있다. 적벽돌, 피라미드 지붕 등 초가집에서 연상한 코드다. 옛날 분들은 김기석 선생님의 작품을 흠모한다. 당시 주택을 전문적으로 다루셨다. 내게 그분은 은인이고, 아버지나 다름없다.

1995년도에 〈집 이야기〉라는 책을 썼다. 그 당시 <집 이야기>라는 제목을 쓸 정도면 굉장한 자신감이 필요했을 것 같다.
집 전문가다. 3백 채 이상 집을 지으셨다. 우리나라 고급 주택은 거의 다 지으셨는데, 건축 색채가 굉장히 강하다. 선생님은 내게 건축은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하셨다. 선배들은 누군가의 특색을 차용할 줄도 알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선생님은 다르셨다. 사람이 확 변할 수는 없다고, 항상 자기 것을 가지라고 말이다.

김기석 선생님에게서 또 어떤 영향을 받았나?
건축의 모든 걸 배웠다. 건축가에게 디테일은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아람광장이 디테일에 굉장히 강했다. 또 선생님이 건축계를 떠나면서 아람광장을 내게 넘겨주셨다. 그런데 차마 선생님 이름을 쓸 수가 없더라. 그래서 ‘꾸시노’를 만들었다. 당시 아람광장에 선생님의 책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것도 버릴 수가 없어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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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긴 수영장이 있는 해변의 펜션 모형이다.

옥상에 긴 수영장이 있는 해변의 펜션 모형이다.

스튜디오 꾸시노

‘꾸시노’는 독특한 이름이다. 어원이 뭔가?
구승민과 이노베이션의 합성어다. 나 스스로 혁신하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다. 다들 일본어인 줄 안다.

그럼 스튜디오 꾸시노로 독립했을 때 몇 살이었나?
1999년이니까. 거의 30세 즈음이다. 그때 독립하면서 강의도 시작했고, 프리랜서로도 몇 년 일했다. 첫 작품이 한스갤러리다. 2년 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설계에 시공까지 했다. 돈도 없었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도했다. 그런데 7천만원의 적자를 봤다. 첫 작품이라 욕심이 컸다.

2년 동안 지었다니 너무 오래 걸렸다.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당시 부천에서 출퇴근했는데, 라면만 먹고살 정도로 형편이 안 좋았다. 김기석 선생님의 고객이어서 덕분에 나도 친분이 깊은 양귀자 선생님이 내게 구기동 사무실을 하나 내주셨다. 그때 선생님이 잘 봐주셨다. 지금도 가족처럼 연락드리며 지낸다.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구기동 사무실에서 살던 시절, 양귀자 선생님이 ‘어머니가 차려주는 식탁’이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하셨다. 음식점 구조 변경이었다. 결과가 괜찮았다. 그 덕에 한스갤러리를 하게 됐으니까. 그런데 7천만원 까먹고, 배신도 당하고, 사기도 당하면서 시공 현장에서 막노동하기에 이르렀다. 내 일이니까. 대표작이라 생각하고 잘 지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거든. 그러다 몸이 상했다. 경기대에 강의 나가던 시절이었는데, 제자들이 많이 도와줬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운 좋게 성북동 부동산 업자를 통해 구조 변경 건이 들어왔다. 그쪽에 외국인 임대 주택이 많은데, 1년에 10건씩 관련 일을 했다. 돈을 갚아야 하니까 정말 많이 일했다. 거기서만 한 20건을 작업했다.

그러다 미국 대사관저도 작업한 건가?
맞다. 굉장히 잘 지은 건물인데, 낡아서 구조 변경이 필요했다. 본래 렌트 하우스로 미국 대사관에서 한동안 이용했다. 현재는 <룸메이트> 세트장으로 알고 있다. 성북동에서는 신축도 여섯 채를 했다. 선생님 아래서 고급 주택을 많이 지어봐서 그런지 기본 규칙을 알겠더라. 그러다 판교 주택도 작업하면서 주택의 재미를 발견했다. 인테리어와 건축을 모두 했는데, 내 것을 갖기 위해서는 한 가지에 몰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건축만 하기로 했다.

아람광장 3년 차에 도쿄 유학을 계획했었다고 들었다. 그때 안 간 것은 후회하지 않나?
전혀 후회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보다 주택 작업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주택은 그 친구들보다 자신 있다. 물론 요즘은 유학 다녀와서도 잘하는 친구들이 많지만 말이다.

사실 3년 정도 배우면, 다 배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구승민 소장은 8년 동안 기초를 다졌기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거다.
평생 아람광장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기석 선생님이 일을 내려놓고 가셨기 때문에 나왔을 뿐이다. 선생님을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지방에서 지내면서 인맥은 없었고, 배우고 싶은 건 많았다. 그런데 내 신입 시절 선생님은 로트링 펜 점묘법으로 삽화 50컷을 그리셨다. 그걸 보면서 큐빅 크로키를 배웠다. 4개월 동안 수만 개의 점을 찍었다. 처음에는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점을 찍다 보니 점과 점 사이가 보이더라. 그게 큐빅 크로키의 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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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아 올리거나, 물 위에 건물을 띄우는 독특한 방식의 건축 모형들.

쌓아 올리거나, 물 위에 건물을 띄우는 독특한 방식의 건축 모형들.

쌓아 올리거나, 물 위에 건물을 띄우는 독특한 방식의 건축 모형들.

쌓아 올리거나, 물 위에 건물을 띄우는 독특한 방식의 건축 모형들.

쌓아 올리거나, 물 위에 건물을 띄우는 독특한 방식의 건축 모형들.

사무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구승민 대표의 아기자기한 소품들.

사무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구승민 대표의 아기자기한 소품들.

사무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구승민 대표의 아기자기한 소품들.

구승민 소장의 크로키 실력이 좋아서 시킨 건 아닐까?
그림은 항상 그리고 싶었다. 아람광장에 들어가서 삽화를 그렸다. 건축은 디테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드로잉으로 섹션과 도면으로 이해하려면 어렵다. 하지만 투시로 보니까 이해가 빠르더라. 그렇게 내 것을 정리할 수 있었다.

요즘은 사무실에서 3D로 디테일을 그리지 않나?
직원들은 루미온이라는 동영상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나는 여전히 드로잉한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전달하기에는 이 방식이 더 정확하다.

첫 직원 뽑고, 빚은 언제 다 청산했나? 당시 7천만원이면 지금 약 2억원에 달하는 큰돈인데.
성북동 렌트 하우스 작업하면서 다 갚았다. 그때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다. 특히 금속과 유리 시공사는 지금도 너무 고마워서 계속 함께 작업한다.

그럼 독립하고 나서 가장 흥했을 때는 언제였나?
4년 전 직원이 7명 있던 때다. 한 해에 프로젝트를 16개 했다. 혼자 7개까지 해봐서, 직원을 늘리면 감당할 줄 알았는데, 안 되더라. 매년 전시회를 열고, 책을 한 권씩 냈는데. 그 이후로는 유지가 안 됐다. 일도 그렇다. 나와 함께하던 시공회사와 작업하면 현장을 지켜볼 수 있어 괜찮은데, 건축주가 데려온 값싼 곳과 일을 하면 일이 터졌다. 굉장히 힘들었다. 그래서 일을 줄이고, 지금은 한 해에 6~7건 정도만 하고 있다.

그럼 모아이 펜션은 언제 작업한 건가? 모아이 펜션은 색도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3년 전이다. 건축주는 펜션을 만들려고 펜션 1백 곳을 다녔다고 하더라. 그럼 펜션에는 나보다 전문가 아닌가? 그럼에도 내게 맡겼고, 일절 터치하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 건축주도 열심히 하고, 조경이나 시공업자들도 잘 만났다. 노란색을 좋아하는데, 건축에 사용한 건 처음이었다.

노란색은 건축에서 잘 안 쓰는 색이니까.
어느 순간 노란색을 봤는데, 정감이 가더라. 삭막하고 창백한 것보다는 원색을 하나 써보자 했는데 건축주가 너무 좋아했다. 그 뒤로 노란색을 자주 사용했다. 색 이름도 꾸시노 옐로라고 정해놨다.

노란색이 공간 확장에 효과가 있고, 구승민 소장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런데 노란색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보수적인 성향의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천차만별이니까.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트레이닝받는 기분도 든다. 그들을 내 것에 동화하도록 만드는 게 어려운데, 또 그 맛에 건축하는 것 같다. 참아야 하는 부분도 있고, 상대방을 눌러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이유로 주택을 못 떠난다. 건축주에게 내 것을 보여줘야 하다 보니까 내성적인 성격도 변하더라.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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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구승민은 그의 부드러운 성격을 닮은 동그란 안경을 쓴다. 그의 작품과 사무실에서 따뜻함이 묻어난다.

건축가 구승민은 그의 부드러운 성격을 닮은 동그란 안경을 쓴다. 그의 작품과 사무실에서 따뜻함이 묻어난다.

50은 겨우 반

여전히 크로키는 하고 있나?
전시 안 한 지는 한 3년 됐다. 예전에는 잡지 연재도 했다. 어려운 건축을 만화로 쉽게 설명하는 칼럼이었다. 건축이 철학적이고 공학적이라 아이들이 건축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만화책으로 건축 이야기를 쓰는 게 꿈이다.

책에 사인할 때 보니까. 서체도 특이하더라.
캘리그래피는 장사익 씨에게 배웠다. 그분이야말로 글씨가 예술이다.

이제 2년 뒤면 50세다. 진짜 좋아하는 걸 해볼 나이기도 하다. 50세가 되면 뭘 해보고 싶나?
우선 돈을 모아야 할 것 같다. 하하. 내 공간을 지어야 하니까. 그게 항상 욕심이었다. 또 50세가 되면 더 소통하면서 지내고 싶다. 사람들을 초청해서 내 작품을 설명도 하고. 예전에는 그런 걸 전혀 못했다. 그리고 30세부터 40대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은 압축해놓은 것 같다. 정말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
 

장순각 교수의 건축가 재정립

장순각 교수의 건축가 재정립

인생은 끝없는 공사의 시작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성을 지으며 살아가고, 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나서야 깨닫곤 한다. 더 나은 건축 방식이 있었다는 것을. 건축가 장순각이 유별난 성을 짓고 있는 건축가들을 만나 그들의 건축 인생을 구성하는 재료와 방법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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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김린용
WORDS 장순각(건축가)

201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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