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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한 … 김광진

김광진과 박용준으로 구성된 듀오, 더 클래식의 첫 음반이 나왔던 1994년. 서태지를 위시한 댄스 곡들이 차트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그때, 김광진은 무균실에서 막 나온 듯 청명한 목소리로 `마법의 성`을 불렀다. 착한 가사와 고급스러운 사운드는 곧 뮤지션 김광진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사실상 멸종 위기였던 어덜트 컨템퍼러리 시장에서 김광진은 여전히 고군분투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을 잘난 척하지 않고 담담하게 부르면서.

UpdatedOn September 03, 2009

  

오늘 아침, 홍진경의 디지털 싱글이 나왔는데 피처링에 당신 이름이 있더라. 홍진경과 김광진이 썩 어울릴 조합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진경 씨가 예전부터 내 음악을 좋아했다. 계속 나와 작업을 하고 싶어했는데 처음에는 좀 망설였다. 내가 여자와 듀엣을 한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결과가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다.

그분이 회사 차려서 돈을 많이 벌었잖나. 사업가 홍진경이 투자를 빌미로 곡을 부탁한 건 아닐까 생각도 했다.
하하. 그건 아니다.

증권가에서 일하는 걸 좋은 경험이라고 했다. 어떤 의미에서?
일단은 펀드도 매일 수익률 경쟁을 해야 하는 분야다. 실적을 내야 하고. 그런 긴장감 같은 것들이 나를 단련시킨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항상 생각보다 운이 잘 안 따른다. 회사 일만 봐도 우리 팀이 좋은 수익률을 낸 것에 비하면 투자가 많이 안 됐다. 그런 것들이 좀 아쉽다. 운명이나 사주 같은 걸 잘 믿는 편인데, 이게 내 팔자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좀 비관적인 성향이 많다. 음악을 만들 때도 잘 안 나오면 너무 불안해 하고. 그래서 어떤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 일정한 직업에 종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음악만 열심히 하는데 좋은 곡이 안 나오면 정말 견디기 힘들 것 같다.

사주? 좀 놀라운데.
진심인데, 역학이나 명리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볼까 생각 중이다.

더 놀랍다.
내가 그런 쪽에 약간 직관력이 있어서 잘 보는 분한테 사주를 보내봤더니 나에게 역술인 기질이 있다고 하더라.

사주 보면 결과가 일관되게 나오나?
어 재능이 있고, 무지 예민한데 생각만큼 명성이 잘 안 따른다던가. 얼마 전에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인터뷰를 봤는데 아직도 보여줄 게 많이 남았다는 말을 했더라. 근데 그게 음악 하는 입장에서는 와 닿았다. 다른 뮤지션들도 항상 뭔가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거다. 하지만 시장이라는 걸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나도 항상 아쉬운 마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더 무뎌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두렵기도 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당신은 음반마다 변화가 많은 뮤지션이다.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결과물은 편차 없이 늘 훌륭했고.
음반을 준비할 때는 항상 막막하다. 내가 좋은 음반을 낼 수 있을까, 걱정만 하다가 막상 음반이 발매되면 이게 너무 맘에 드는 거다. ‘아, 이것보다 더 좋은 음반을 또 낼 수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 새로운 음반을 내면 또 그 음반이 좋은 거다. 그런 후회와 기대의 반복이랄까. 항상 그런 식이다. 하하.

그래도 지금 생각해도 잘 쓴 곡들이 있지 않나?
나는 잘한 걸 오래 기억하는 성격이 아니라 못한 걸 오래 기억하는 성격이다. 안 좋은 습성이지. 잘됐던 건 다 잊어버리고, 불편했던 기억만 남아 있는 거다.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는 건가.
완벽주의자는 아닌데 항상 안 좋았던 점들, 어떤 고정관념이 있나를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내 노래 들으면 고정관념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그걸 빨리 깨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난 예전과 전혀 다른 걸 해냈을 때의 나 자신이 좋다. 나한테서 이런 게 나왔네 싶은 것들. 기존의 것들을 답습하는 걸 굉장히 답답해한다.

그래도 팬들은 변화를 그렇게 원하지는 않는다.
팬은… 잘 모르겠다. 난 누가 와서 팬이라고 하면 거짓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실감이 잘 안 난다. 가끔 금융권에 근무하는 후배들 중에도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은 내가 롤모델이라 하는데 사실 나는 하루하루 너무 빡빡하게 살고 있거든. 우연히 두 가지 일을 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아쉬웠던 부분들이 많지. 오늘 인터뷰하러 나올 때도 고민했다. 남성지를 보는 독자들이 내 얘기에 관심이 있을까 싶어서.

  “1990년대에는 어떤 곡이 차트에서 1위를 하면 충분한 당위성이 있었다. 그럴 만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었던 거다. 하지만 요즘은 무엇 때문에 이 곡이 1위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 음악? 내 음악은 저평가 우량주랄까? 아니, 저평가 장기 소외주가 더 맞겠다.” 

남성지를 자주 보나.
남성지를 좋아한다. 신제품이나 자동차, 스포츠에 늘 관심이 있으니까.

자동차와 스포츠.
그렇다, 나 스포츠광이다. 농구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농구만이 아니라 모든 스포츠를 다 좋아한다. 어릴 때 꿈은 스포츠 보조 해설가가 되는 거였다.

참 의외의 코드들이 많다.
생각과는 좀 다르지? 모르겠다. 내가 이런 인터뷰를 힘들어하는데 오늘은 뭔가 유쾌하다. 어떤 인터뷰 가서는 예, 예만 반복하다 온 적도 있다.

가장 타보고 싶은 차는 뭔가.
요즘은 BMW X6가 그렇게 맘에 들더라. 근데 너무 비싸더라. 한 2년쯤 기다렸다가 중고를 살까 생각 중이다. 그 전까지는 아우디의 A6. 난 자동차는 좀 사치를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가격이 문제여서 그렇지.

‘편지’를 부르는 김광진과 잘 조합이 안 된다. 아직도 그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말이지. 그 노래의 가사는 아내가 겪은 연애담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들었다. 남편으로서 질투가 날 만도 한데, 대인배라고 생각했다.
사실 가사 쓸 때는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다. 일단 가사가 빨리 나와야 하니까 빨리  쓰라고 재촉은 많이 했지. 처음 아내에게 가사를 받았을 때는 좀 별로라고 생각했다. 이건 너무 비굴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했었으니까.(웃음) 하지만 녹음한 테이프를 차에 타서 듣는데 굉장한 느낌이 있더라고. 내 노래 들으면서 눈물이 난 건 거의 처음이다. 아마 듣는 분들도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을 갖지 않았을까 싶다.

‘편지’는 젊은 층도 굉장히 좋아했던 노래다. 그 정서가 10대에게도 어필하는 것이 참 신기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보편적인 정서는 누구에게나 있다. 떼쓰고 징징대는 어린 사랑이 아니라, 어른의 속 깊은 사랑에 대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그렇게 생명력이 긴 곡을 항상 쓰고 싶지만 의도한다고 항상 되는 건 아니니까.

뮤지션 입장에서는 젊은 세대가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서 섭섭함이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요즘 발표되는 노래 가운데 대형 기획사에 속한 그룹들의 노래는 차라리 완성도가 있다.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그런지 깜짝 놀랄 만한 곡들이 있다. 그쪽을 제외하면 많은 노래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태의연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말도 못하게 후퇴한 부분도 너무 많다.

그건 리스너들의 책임도 된다.
어쩔 수 없는 거다. 우리가 어릴 때는 영화 같은 매체들을 가뭄에 콩 나듯 접할 수 있었잖나. 그러다 보니 대부분 문화적 연결고리는 음악이었다. 일단 팝 음악이 번성한 시기였고 많이 듣다 보니 어떤 음악이 수준이 높다는 걸 아는 거지. 책 많이 읽은 사람들은 어떤 책이 잘 쓴 건지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근데 요즘에는 환경이 너무 멀티미디어 위주라서 실력이 있고 없고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흔들리는 것 같다. 내 아이들만 봐도 엽기적인 음악들만 좋아하니까. 그런 음악적인 감각 면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젊은 세대보다 분명히 한 수 위다. 그러다 보니 우리 기준에는 수준 낮은 음악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지. 트렌드를 떠나서 음악적인 완성도의 문제인 거다.

서태지를 미워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더 클래식의 1집이 나온 1994년은 서태지와 듀스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할 때였다.
참 좋은 시절이었지.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 색깔을 가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발라드건 댄스 곡이건 1990년대에는 어떤 곡이 차트에서 1위를 하면 충분한 당위성이 있었다. 그럴 만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었던 거다. 하지만 요즘은 무엇 때문에 이 곡이 1위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신 말대로 ‘마법의 성’은 1위를 할 만한 당위성이 충분히 있는 곡이었다. 하지만 그 곡 때문에 부담도 많았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서, 정말 힘들었다. 요즘도 생각한다. 더 클래식의 1집이 한 10만 장 정도만 팔렸으면 오히려 더 행복했을 테고 이후 작업도 의욕 있게 했을 것 같다고. 이후에 내놓은 곡들이 음악적으로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마법의 성’에 못 미친다는 상실감에 너무 힘들었다. 지난 2002년에는 콘서트 준비를 하다가 사기까지 당했다. 그러니까 뭔가 힘이 쫙 빠지는 거다. 음악을 당분간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후 6년 가까이 음반을 내지 않았다. 그 6년 동안 뮤지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직장 생활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상처받을 일들이 많았지.

예를 들자면 어떤 건가.
그러니까… 가령 IR 행사 같은 곳에 갔는데 누가 노래 한 곡을 부탁하면 거절하기가 참 쉽지 않다. 물론 내가 노래를 하면 분위기는 좋아지겠지. 하지만 음악 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니까. 그렇게 노래를 하면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너무 소모되는 것 같고. 그런 경험들이 음악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 가뜩이나 비관적인 성향이 있는데, 더 비관적으로 변하는 거지. 우울해지고.  

지금은 ‘마법의 성’의 짐을 좀 벗었나.
아직도 있지. 사실 ‘편지’는 히트 곡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 노래를 많이 좋아해줬지만, 히트 곡이라기보다는 구전 가요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음반이 나왔을 때도 폭발적인 반응은 아니었고. 그 당시 음반을 낼 때만 해도 매니저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케팅이 참 어려웠다. 지금도 그런 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게 참 어렵지. 마케팅에 재능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과 일하자니 너무 많은 구속을 받기 때문에…. 이게 내 팔자인가 싶다. 내가 일하는 자산 운용사도 지난 3년간 성적이 1등인데도 불구하고 마케팅이 잘 안 됐다. 가요계에서 겪었던 일들을 금융계에서도 겪고 있는 거다. 하하. 좋은 성적을 내지만 약간 소외되는 게 나의 팔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당신에게 음악은 주식으로 치면 단기주가 아니라 장기주겠지? 죽을 때까지 품고 있어야만 할 그런….
그럼. 음악은 내 소명 같은 거다. 음악을 할 때 가장 고통스럽고, 또 가장 행복하다. 내 음악은 저평가 우량주랄까? 아니, 저평가 장기 소외주가 더 맞겠다.(웃음) 당신 말대로 죽을 때까지 품고 가야 할 그런 종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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