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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섹스의 추억

인간은 환상을 먹고 산다. 특히 섹스에 있어선 더 그렇다. 내 책상 밑이 일본의 포르노 제작사 소프트 온 디맨드와 연결돼 있는 공간이길 꿈꾼다.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처럼 말이다. <br><br>[2006년 12월호]

UpdatedOn November 20, 2006

Photography 게티이미지 Words 윤석만(회사원) Editor 성범수

책상 밑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 남자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다. 결재를 받으러 들어온 부하직원은 어떤 낌새도 채지 못한다. 문을 닫고 나가자 카메라는 책상 밑을 비춘다(때론 결재를 받으러 온 부하직원도 동참하는 경우가 있지만). 성인물에 언제나 등장하는, 빨간 립스틱을 바른 여자가 입으로 그를 위로해주고 있다. 제목이 존재하지 않았던 포르노 영화의 한 장면이다. 교복, 간호사복, 세일러복에 열광하는 건 포르노 때문에 생긴 제복 도착증이다. 난 그런 제복엔 관심 없다. 단지 사무실 책상 밑에서 은밀한 행위를 즐기고 싶은 열망만 있을 뿐이다. 생존을 위해 다녀야 하는 회사는 수녀원의 신성함까지 느껴질 정도다. 우리는 지각하지 말고 태업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에선 교장실에 대변을 보는 이야기가 나온다. 초등학교 공중전화 박스에서 섹스했다며 자랑하던 군대 고참은 전교 1등만 해온 사람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공부만 해야 되는 줄 알았을 거다. 무언가 굉장히 딱딱한 게 있다면 깨고 싶은 게 우리네 마음이다. 일탈이라고 규정 지어 비난받지만 그런 행동은 사람을 흥분시킨다. 내가 회사에서의 섹스를 떠올리면 흥분되는 이유 중 하나다. 아니, 그 정도 용기까지는 없고 그냥 책상 밑에 여자를 숨기고 오럴섹스를 받고 싶다. 그걸로 충분하다.
내 사무실을 묘사하자면 그냥 열려 있는 공간이다. 아무리 작은 여자라도 들키지 않고 내 물건을 보듬어 줄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서글프다. 영화에선 홀로된 공간에서 잠시 들어온 여비서와 그짓을 한다. 물론 내가 혼자 방을 쓸 나이가 되면 난 자식 둘은 딸린 유부남일 거다. 그 나이가 되면 노인 냄새나는 내 물건을 사무실에서 함부로 꺼내놓을 수도 없다. 아무리 비위 좋은 여비서라도 사표를 던지고 뛰쳐나갈 것이 자명하다. 내가 오피스 섹스의 영광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야근할 때 다방에 전화를 걸어 여자를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에 티켓 다방이 없다. 아니면 차에 꽂힌 명함을 보고 연락을 해볼까도 생각해봤다. 그들은 어디든 달려올 기세였으니까. 그녀의 외모가 명함에 담긴 모습 그대로라면 대환영이겠지만, 그럴 일은 절대 없다. 결국 가장 가까운 데서 찾아야 했다. 내 앞자리 그녀는 다음 달에 결혼한다고 호들갑이다. 물론 같이 합궁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부담스러운 외모다.
관리부의 미스 유는 다리 하나는 볼만하다. 그런데 괜스레 잘못 건드렸다간 사표를 내야 될지 모른다. 그녀는 떠난 남자 때문에 몇 달 동안 회식 자리에서 술만 마시면 울었다. 내가 만약 그녀와 오럴섹스를 하고 떠나버린다면, 회식 자리에서 내 만행을 모두 까발릴 것 같다.
난 메신저를 켰다. 운명공동체라고 생각되는 입사 동기들을 공략하는 게 가장 적절한 방법이란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메신저의 대화명들을 확인했다. ‘지나간 자장면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나 ‘불량 엄마 되기’같은 대화명은 버렸다. 도대체 아무런 감흥이 오지 않는 것들을 공략할 순 없었다. 하나가 걸렸다. ‘그냥’이라는 대화명이었다. 그건 파티션 10개쯤 너머에 있는 여자 동기의 아이디였다. ‘그냥 다 받아주겠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물론 ‘그냥 모든 게 싫어, 거부할거야’ 이런 걸 수도 있는데 그놈의 리비도 때문에 난 내 식대로 모든 걸 해석했다.
서두르면 욕 먹을 걸 알지만 주저 없이 말해야 성공 가능성이 있다. 말 안 하고 눈치만 보면 절대 기회를 잡지 못한다. 프로들도 실패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나보다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다. 어쩌면 성공률은 나보다 낮을 수 있다. 얼마 전까지 난 확실한 고기에만 미끼를 던졌다. 성공률은 좋았지만 난 여자 경험이 많을 수 없다. 부산에 살고 있는 내 친구가 말해준 건데 하자고 10번 말하면 3명하고는 잘 수 있다고 한다. 난 10명을 만나도 1명 정도하고 관계를 맺는다. 나머지 9명한테는 아예 모텔 가잔 말도 못한다. 그 친구는 나보다 세 배나 많은 여자와 잤다. 나는 그 친구를 닮고 싶었다.
말을 걸었다. 우선 밥을 먹자고 했다. 로또를 샀는데 4개가 맞았다고, 그리고 여자친구가 없어 쓸 데가 없다고, 끈적하게 굴었다. 그녀의 답은 당연히 예스였다. 점심을 먹으며 서둘러 말했다. 좋아하고 있었다고. 약간의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다.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한번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썩은 미소를 보내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게 아니었나 보다. 맨 정신이 아닌 나이트클럽에서나 가능한 수법이었던 거다.
난 회사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됐다. 그냥 사표낼까? 그녀가 쿨하다는 소문을 믿어보기로 했다.
며칠이 지났다. 그녀에게 다시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그녀가 순순히 대답했다. 야근한단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가 보낸 긍정의 사인이다. 우선 책상 밑에 쌓아둔 것들부터 정리했다. 그녀가 쪼그리고 앉았을 때를 위한 배려였다. 카펫을 사다 놓을까도 생각했지만, 의도를 들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때를 기다렸다. 야심한 사무실엔 그녀와 나 둘만 남은 걸로 확인됐다. 야간 순찰을 하는 경비아저씨는 방금 전 내 사인을 받고 자리로 돌아갔다. 아침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자기 자리로 오란다. 그럴 순 없다. 내 자리 이미 치워놨는데. W호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앉을 만한 곳이다. 그렇다고 여기 앉아서 오럴해줘야 한다고, 청소했으니까 옷 더러워지진 않을 거라고 말할 순 없다. 우시장에 가는 소처럼 그녀 자리로 갔다. 그녀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의자에 앉아 있느라 살짝 올라간 스커트 덕에 처음 본 그녀의 허벅지가 드러났다. 발기가 누구보다도 빠른 편인 난 두둑해진 그곳이 못내 부끄러웠다. 그녀를 만졌다. 물론 대화를 하며 그냥 살포시 팔을 만진 것뿐이다. 오해는 마라. 다행히도 그녀의 얼굴에서 짜증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정신차려야 한다. 순간의 방심이 부풀어오른 내 물건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 난 좀 더 과감하게 돌진했다. 이미 내 손은 그녀의 팔이 아닌 쇄골 쪽으로, 그러니까 그 밑을 향하고 있었다. 반항의 기색은 없었다. 크진 않았지만 골이 아담하게 진 그녀의 가슴에 안착했다. 묵직하진 않았지만, 무게감은 있었다. 그레이 블라우스의 단추를 다 풀진 않았다.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이래야 했다. 그녀의 손이 내 엉덩이에서 느껴졌다. 키스를 했다. 생각대로 그녀의 흡착력은 꽤 괜찮았다.
텅 피어싱을 했었나 보다. 내 혀가 그녀의 혓바닥에 난 구멍을 찾아냈다. 이 여자, 프로 같다(여자들이 텅 피어싱을 하는 건 오럴섹스할 때 남자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지극히 남성 편향적인 해석이긴 하지만). 하여튼 혓바닥에 난 구멍은 용기를 줬다.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오버했다. 책상 밑으로 들어가라고 외쳤다.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책상 밑으로 순순히 기어 들어가진 않았다. 내 오산이었다. 되레 책상 위에 있는 모든 물건을 바닥으로 밀어버렸다. 이건 영화 <올드 보이>에서 본 장면이다. 물론 내가 수동적인 입장이 되었다는 것만 다를 뿐. 책상 위에 눕혀진 건 나였으니까. 내 팬츠 지퍼를 내리고 흥건히 넘치는 타액을 이용해 강렬한 흡입을 했다. 공간의 특수성은 날 긴장하게 했다. 금방 반응이 온다. 이른 사정을 하면 안 된다. 그녀를 조심스럽게 밀쳐냈다. 위기에서 빠져나가는 최상의 방법은 내가 서비스를 해주는 거다. 타이트스커트를 찢어버리고 싶어 약간 힘을 주었다. 그러다 멈췄다. 집에 뭘 입고 가지? 결국 골반까지 스커트를 밀어올렸다. 음모가 조금 드러났다. 두덩 부분만 시스루인 속옷 덕분이다. 문제는 스타킹을 먼저 내려야 속옷도 같이 내릴 수 있다는 거다.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에게 엉덩이를 조금만 들라고 눈짓했다. 눈치 빠르다. 사인을 보낸 동시에 그녀는 엉덩이를 들었고 난 밑으로 당겼다. 우리는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한 훌륭한 배터리 같았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애무 없이도 여자를 젖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를 돌려 세웠다. 후배위를 거부하진 않았다. 책상 밑으로 던져 넣어야 해, 라는 강박이 날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결국 난 내가 닿을 수 있는 깊은 곳까지 뒤에서 밀어넣었다. 삽입은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어떤 말도, 탄성도 지르지 않았다. 내가 너무 작은 건가? 고민하는 찰나 반응이 왔다. 피스톤 운동 몇 번 했는데 금방 절정에 올랐다. 콘돔이 없었기 때문에 몸속에 내 것을 남길 순 없었다. 다른 사람의 책상에 묻히지 않기 위해 방향을 바닥으로 몰았다. 속옷과 스타킹을 올리고 스커트를 내린 그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만족했는지는 모르겠다. 난 바닥을 닦아내느라 정신없었으니까. 별로 보기 좋은 그림은 아니었을 거다. 다음이 문제였다. 나가서 해장국이나 먹을까,라고 말할 수도 없고, 모텔에 가서 씻자, 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자기 먼저 퇴근하겠다고. 난 아직 내 책상 밑에 여자를 넣어보지 못했다. 그녀는 내 목적을 위해 최고의 역할을 수행해줄 무적의 낙하산 요원이었는데, 무릎 꿇고 한 번만 더 하자고 구걸해볼까도 생각했다. 난 용기가 없었다.
환상을 만족시키진 못했다. 단 한 번 경험한 오피스 섹스의 추억은 이렇게 끝났다. 그녀는 회사를 그만뒀다. 산타클로스처럼 퇴사 전에 내게 주고 간 추억의 섹스였다. 난 오늘도 메신저를 두드린다. 로또 네 개 맞았는데 여자친구가 없어 밥 사줄 사람이 없다는 말로 운을 뗀다. 밥은 잘들 먹는데 내 물건은 먹어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10명에게 덤비면 3명은 걸린다는 통계를 믿고 있으니까. 부산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지금 작전회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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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윤석만(회사원)
Editor 성범수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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