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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에 차를 갖고 오시다니요

토하고 춤추고 토하고 춤추고를 반복했던 홍대 클럽 시절이 그립다. 그때는 남의 맥주인지 내 맥주인지 분간도 못하고 그저 집히는 건 뭐든 마셔대며 춤을 췄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 나를 제외한 친구들은 이제 클럽에 차를 갖고 온다. 요즘 강남 클럽의 풍경은 적어도 그러하다. <br><br>[2008년 8월호]

UpdatedOn July 22, 2008

Words 이주영(클럽 컬처 매거진 <블링> 편집장) Photography 김지태 Editor 이지영
cooperation 제규어 assistant 오성영

강남 클럽 앞에는 자동차가 줄을 선다
“아우, 요즘 홍대 클럽 물이 많이 구려요.” 한 DJ의 말이다. 시작부터 상스런 표현을 빌려와 송구스럽다. 그래도 나빠진 건 나빠진 거다. 시쳇말로 ‘물’이라는 단어는 특정 공간에 드나드는 사람들에 대한 외관을 규정한다. 한마디로 ‘멋지고, 예쁘고, 있어 보인다’라는 뜻이 물이라는 한 단어에 함축되어 있다. 댄스 클럽의 메카라 여겨졌던 홍대 근방의 클럽을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예전과 달리 물이 흐려졌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클럽에서 놀고 있는 클러버 B씨는 “최근 홍대 클럽에서 노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영등포 지역 나이트클럽을 떠올리게 돼요”라며 불평한다. 서두부터 이렇게 구구절절 ‘물 타령’을 하는 이유가 있다. 그건 이 글의 핵심 소재인 ‘자동차 혹은 밸릿 파킹’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약 2개월 전의 일이다. 청담동에 위치한 클럽 앤서(ANSWER)에서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조그마한 파티를 주최했다. 회사 업무의 연장인 관계로 밖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필자는 놀라운 풍경을 목도했다. 영동대교 남단 부근에 위치한 클럽의 도로변이 승용차 행렬로 장관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고서는 일찍 도착하여 늦게 입장하는 손님들의 불평, 불만을 들어야만 했다. “클럽에 무슨 차가 이렇게 많은 거야. 주차하는 데에만 1시간이 걸렸네.” 이런 광경은 매 주말이면 앤서뿐만이 아닌 강남역의 클럽 매스(mAss), 압구정동의 클럽 서클(CIRCLE) 등에서 쉬이 볼 수 있다. 유독 대형 클럽이 즐비한 강남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인 셈이다.

포장마차도 하는 밸릿 파킹
밸릿 파킹은 카페, 레스토랑 등에 들르기 위해 일정 금액의 돈을 지불하고 자동차 열쇠를 맡기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편리한 시스템이다. 우리는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들에서 이런 광경을 보며 부러워해왔다. 주차해주는 대신 요금을 내는 방식인 밸릿 파킹이 한국의 서울이란 도시에 정착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강남 지역 유흥업에 종사해온 A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지만 언젠가 ‘텐트바’류의 포장마차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아마 유흥업소의 전문 밸릿 파킹 시스템은 그쪽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일명 ‘포차’라 불리는 술집은 밤 문화의 가장 기초가 되는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도 고객들의 자동차를 안전하게 관리하는데, 그보다 수준 높은 업소에서 밸릿 파킹을 하지 않으면 곤욕을 치를 판. 이에 주차 공간을 찾아내기 쉽지 않은 복잡한 강남 땅 덩어리의 모든 업소들은 ‘밸릿’이란 꽤나 어려운 단어를 상용화하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카페도 밸릿 파킹을 하는 판에, 술값 비싼 강남의 클럽에서 밸릿 파킹 업체를 두지 않는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강남권 클럽 성공 확률 0%’의 부정을 깨뜨리고 대형 클럽의 선두 주자로 나섰던 클럽 서클이 이러한 시스템을 마련했다. 연이어 2007년부터 클럽 대형화의 선두 주자로 우뚝 나선 앤서와 매스도 밸릿 파킹 체제를 도입했다. 매주 금·토요일 밤이면 클럽 주변은 주차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주차를 위해 줄 서 있는 자동차의 레벨은 그 클럽의 ‘물’을 파악하는 기초적인 잣대가 되었다. 또한 내 차를 직원이 대주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강남과 강북의 클럽 문화를 가로지르는 주요한 척도가 되어버렸다.

강남 줄리아나, 강북 오디세이
자동차로 클러버의 등급을 재단한다는것, 대단히 속되고 물질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밤 문화 관계자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이 글에서 ‘밸릿 파킹과 클럽’을 재단하는 것 또한 음악이 좋아 그 공간을 찾는 대다수 클러버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밝힌다. 각설하고 강남(압구정동, 청담동, 강남역)과 강북(홍대) 클럽에 대한 시선은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궤를 달리한다. 강남 대형 클럽에 차를 가져가 밸릿 파킹을 하고, VIP룸을 찾는 클러버 혹은 파티 피플들. 그들의 눈에 홍대 클럽은 ‘언더그라운드’처럼 느껴진다. 홍대 클럽의 초기 혹은 전성기 시절을 보낸 1세대 클러버들은 이미 30대가 훌쩍 넘어버렸다. 작금의 클럽 신은 일종의 물갈이, 세대교체, 과도기라 칭할 수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현재 클럽을 찾는 연령대는 20대가 대다수다. 그들에게 클럽 MI, 마트마타 등은 구시대의 유물일 뿐, 앤서, 매스 등이 동시대의 핫 클럽이 그곳에서 클러빙 라이프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강남과 강북 클럽 문화에 대한 비유 중 재미난 사례가 있다. 나이트클럽이 승승장구하던 20세기 말을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 터다. 강남역에 즐비했던 나이트클럽 중 오디세이와 줄리아나의 비교다. 일반적인 학생들이 가던 곳과 당시 오렌지족으로 불리던 이들이 가던 장소. 그것이 전자와 후자의 차이며, 현재 강북과 강남 클럽에 대한 위트 있는 비교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강남과 강북의 클럽은 ‘그때 그랬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간극을 두고 있다. 물론 진짜 클러버들은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진정 즐거운 파티가 있는 곳을 찾지만 말이다.
클럽에서 비즈니스와 사교를 하다
위에서 행한 과거 나이트클럽과 현재 강남 클럽의 비교는 “강남 클럽은 여전히 나이트클럽 같아”라는 불평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강남에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피플’들은 사적인 유희를 원한다는 점에서도 한강을 가로지르는 방향을 두고 차별성을 띤다. 홍대 클럽은 한데 어우러져 진정으로 어울리는 태도가 아직 존재한다. 그러나 강남의 대형 클럽들에는 그보다 ‘프라이빗’이라는 단어가 좀 더 중요시된다. 동시에 강남 지역에서 클럽을 찾는 이들에게는 ‘천박함’이라 지칭될, 약간은 나이트클럽식의 향락 의식도 있다. 결론인즉슨 앤서, 매스 등의 VIP룸에 자리 잡은 이들은 하이-클래스와 천박함의 경계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 이것은 클럽 밸릿 파킹이라는 외형적 시스템과도 깊은 관련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분명 강남 클럽에 대한 기성 및 보수 세대의 시선은 곱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권의 댄스 클럽에는 현대에 들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비즈니스’ 및 ‘사교’라는 중요한 행위가 실천된다는 점. 이야말로 그 삐딱한 시선을 살짝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다. “클럽에 가면서 왜 차를 가지고 가? 술 먹고, 춤추고, 신나게 놀러 가는데 차가 웬 말이야?”라는 의문들. “사업차 클럽에서 누구를 만나기로 했어!” 이 정도면 명쾌하게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홍대 클럽 문화는 ‘저녁 6시 10분’이라는 시간 표현으로 시원하게 풀린다. 퇴근 이후의 애프터 라이프.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고,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클럽. 어쩌면 이것이 홍대 나이트 컬처를 규정하는 핵심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강남의 클럽 문화는 업무의 연장 선상에서 행해지는 주요한 미팅 장소라고도 할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벌이고 있는 P씨는 “클라이언트와 만나려고 하는데 홍대 클럽을 약속 장소로 정하기는 좀 민망하다”며 주차가 편리하고, 대화가 가능한 강남 클럽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또한 강남 클럽의 긍정적 면을 배가시키는 ‘사교장으로서의 클럽’ 기능도 무시할 수는 없다. 트렌디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만큼, 그곳에서 어울리는 동안 확보되는 ‘관계’. 이야말로 현대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이득이기 때문이다. 현재 강남 클럽은 그러한 점을 잘 이용해내고 있다.

나도, 나도 마케팅
홍대 지역 클럽에 비해 강남 클럽을 좀 더 ‘핫’하게 만드는 요인은 ‘트렌드’라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마케팅 용어다. 파티 및 프로모션 디렉터를 맡고 있는 H씨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클럽 운영도 여느 비즈니스와 다르지 않게, ‘미 투 마케팅(Me, Too! Marketing)’이 중시되고 있다. 내 수중에 1만원밖에 없어도 선글라스를 끼고 스타벅스에 앉아 있는 것. 지나가는 사람 눈에는 한심해 보일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멋진 트렌드세터들이 그곳에 있다면, ‘나 역시’ 그곳에 가고 싶을 거다.” 이 마케팅 전략은 클럽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많은 클럽들이 첫 오픈 당시, 바텐더 및 웨이트리스를 비롯해 클럽 내부를 선남선녀들로 채우는 것도 마찬가지 전략인 것이다. 연예인 A모 씨가 잘 가는 클럽. 그러면 ‘나도 갈래’라는 말이 절로 나올 테니 말이다.
홍대 중심의 클럽과는 달리 강남 대형 클럽은 분명 차이점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꽤 잘나가는, 속칭 패션 피플 및 트렌드세터들이 들른다는 소문과 함께 ‘워너비’를 욕망하는 그들과 한 공간에 있기를 원하는 클러버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자동차를 몰고 클럽에 가는 건, 그래서 당연지사다. 그럼 밸릿 파킹이란 시스템은 그림자처럼 달려온다. ‘강남’이란 지역 특수성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면, 클럽에 차를 가지고 가는 건 결코 당혹스럽거나 의아한 행위가 아닌, 자연스런 일상이 된다. 필자 역시 대중 교통수단으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강남의 몇몇 클럽을 갈 때면, 자동차 키를 주머니 속에 넣는 데 주저함이 없으니까. 단, 클러빙 후 음주 운전은 절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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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이주영(클럽 컬처 매거진 <블링> 편집장)
Photography 김지태
Editor 이지영
cooperation 제규어
assistant 오성영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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