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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을 마치고

이제는 돌아와 카메라 앞에 선 김정은. 그녀는 타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UpdatedOn May 11, 2015

보디수트와 카디건은 모두 보테가 베네타 제품.

커피숍에 김정은이 들어온다. 촬영 전에 인터뷰부터 하기로 했다. 김정은은 목욕하고 바로 나왔다고 한다. 민낯으로 나와 미안하다고도 한다. 에디터에겐 오히려 고마웠다. 편안한 그녀의 모습이 질문하기에는 더 편하니까. 아무래도 각 잡고 앉아 있는 사람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긴 좀. 사람들에게 김정은을 만난다고 하자 반응이 한결같았다. 북한…? 영화 <인터뷰>의 실제 상황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김정은에게 북한 김정은 얘기를 하려 했다. 꺼릴까 걱정했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낸다. 북한 김정은이 유명해져 인터넷을 도배하는 상황이 내심 당황스러웠다고. 북한 김정은이 인터넷을 점령할 때 배우 김정은은 학교에 갔다. 학생을 가르치고 학생에게 배웠다. 채운 걸 꺼내 들고, 이제 드라마에 출연한다.

2012년 이후로 안 보였다. 그동안….
그랬나? 횟수로 따지면 3년이네. 딱히 안보이려던 건 아니었다. 1년 전부터 성신여대에서 강의도 했다. 그동안 특강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일회성으로 가면 인터뷰일 뿐이니까. 내가 뭘 애들을 가르쳐, 했는데 길게 몇 학기 가르쳐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이 들어와서 하게 됐다. 스스로 정리하는 기회도 됐다. 내가 애들에게 줄 건 뭐, 당근밖에 없었다. 상처받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하하.

아무래도 강의라는 단어가 주는 부담감이 있었을 텐데.
다행히 시작하기 전에 안심시켜주셨다. 마지막 4학년들, 모든 걸 다 하고 난 후에 실전을 익히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선배로서 알려주면 된다고 했다. 얘들아 드라마에선 이러저러하단다, 하고. 일단 솔직하게 다가가려고 했다. 애들에게 내가 아는 걸 솔직하게 다 얘기해주려고 했다. 너는 안 돼, 이런 솔직함 말고, 하하. 우선 카메라를 두려워하는 거 같아서 수업 때 항상 카메라로 찍었다. 무조건 실기, 실전으로 하는 거다. 그러면 얘기할 거리가 무한대가 된다. 이런 경우, 저런 경우. 과목명이 오디션 테크닉이었으니까.

오디션 테크닉이란 과목은 처음 들었다. 따지고 보면 잘할 수 있는 전문 분야이긴 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뭔가 하나 얘기할 때 많은 걸 생각해야 한다. 조심스럽다. 중심이 있고 주변이 있는데, 주변을 잡아주려 얘기하다 중심이 사라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소탐대실하지 않고 중심에 집중하려고 했다. 내가 잡은 중심은 ‘너는 훌륭해. 빛나. 네 자신을 믿어’ 이거였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 자신을 믿으라고 했다. 내가 그런 경험이 있었으니까.

가르친 학생들 중에 오디션에 합격한 애들이 있나?
두 학기 가르쳐서 아직…. 졸업한 친구들은 있다. 한 친구는 조교로 있고. 졸업한 친구들이 가끔 문자도 보낸다.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학교 졸업한 친구들이 어딘가 나오면 기쁘다.

흰색 셔츠는 까르뱅 제품.

가르치다 보면 오히려 배운다고 한다.
맞다. 말하다 보면 스스로 정리되는 걸 느낀다. 특히 활동하지 않은 시기여서 나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형적으로 보이는 게 무섭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20년이 다 돼가니까. 뭐 하나를 20년 하면 얼마나… 전형적일 수밖에 없나. 그런 게 무서웠다. 애들을 가르치며 나도 똑같이 무언가 배웠다. 애들은 아직 잘하지 못한다. 그 애들에게 남의 걸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면 네 것이 되는 거야, 하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애들의 신선하고 좋은 것들을 빨아들여 배우기도 하는 거다. 그런 방식이 재미있었다. 일단 애들에겐 칭찬만 해줬다, 하하.

드라마 촬영하는 지금도 강의 나가려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
솔직히 힘들다. 안 하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그런 걸 좋아하셔서 그냥 하라고 하셨다. 정 힘들면 현장 수업을 하라고, 하하.

오랜만의 현장인데,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 드라마 현장이다. 그래서 더 편할까, 더 힘들까?
운이 좋게도 몸을 많이 써야 하는 드라마여서, 사람들은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무장하는 기분이어서 좋다. 촬영하기 전에 액션 배우러 가고, 감독님도 만나고, 뭐도 하고. 많이 준비하면서 대비책을 세우면 현장에서도 두렵지 않다. 어느 배우나 첫 촬영, 처음 본 스태프, 첫 현장은 긴장한다. 촬영하기 전에 그 어색한 요소를 없애려고 한다. 현장 가기 전에 친해져버린다든가 하면서. 긴장의 싹을 하나씩 잘라버리면 좀 괜찮다.

적극적으로 문제될 것들을 정리해 판을 유리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내가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나 자신을 위해서다. 남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 나 먹고살려고 준비하는 거다. 액션 모르니까 먼저 가서 더 배우는 거고. 안 하면 내가 헤매니까. 사람들이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면, 감사하다.

드라마 배역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마냥 밝기만 한 여자였다면,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 아들이 죽은 엄마….
아줌마, 너무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 내 또래 여자들은 다 결혼하고 아이가 있으니까. 그냥 평균인 거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뜬금없이 옛날 <파리의 연인>처럼 유학생으로 나오면, 내가 오그라든다, 하하. 아줌마라서 싫고 아이가 있어서 싫고 이미지 때문에 안 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다.

흰색 절개 톱은 캘빈클라인, 데님 재킷은 알렉산더 왕 제품.

당연한 건데, 다들 신경 쓰는 부분이니까.
엄마도 예쁘고 화려할 수 있는데, 하하. 난 성 안의 예쁜 공주 같은 배우로 출발하지 않아서 망가짐과 포기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개인적인 만족이 다른 거다. 오히려 깊은 감정을 느낄 상황을 연기해 사람들이 공감한다면 더 만족할 것이다. 물론 이런 건 상처 받을 거다. 내 얘기가 아닌 다른 사람 얘기에 엄마로 나오면 아직….

이제는 김정은 하면 2000년대 작품들이 먼저 떠오른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인 듯하다. 가장 많이 사랑받은 시절이자 가장 빛났다. 계속 이어지면 좋겠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중요한 건 그 시절 이후 어떤 마음으로 활동하느냐, 아닐까?
한 5년, 10년 뒤에는 다시 김정은의 2010년대가 다뤄질까. 무슨 ‘토토가’처럼? 하하. 그래서 본의 아니게 3년을 쉰 거 같다. 나는 일하는 걸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실 앞뒤 안 가리고 야 이거 괜찮다, 하고 꽂히면 그냥 하는 스타일이다. 내 이미지에 어떨까 재기보단 약간 무모하고 용기가 있다. 머리를 깎고 연기하는 건, 오히려 재밌는 일이지 중요한 건 아니다. 머리 따위야 자라는 거 아니야? 하면서. 그런데 뭔가를 하고, 만나고 싶었는데, 만날 수 없더라. 그렇다고 타협하긴 싫더라.

음….
아무래도 20대 때 중심에 있다가 30대 지나면서 사이드로 있을 수밖에 없잖나. 중심에 있는 친구들은 당연히 더 어린 친구들일 테니까. 그렇지만 중심만 존재하는 건 아니므로 분명히 기회는 있다. 좋은 걸 만나야 하는데, 나도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조급하게 타협하는 게 맞는지 좀 더 기다리는 게 맞는지 하다가, 에이 그냥 기다리자 하다 3년이 지난 거 같다. 2004년 <파리의 연인>으로 자고 일어나면 무서울 정도로 사람들이 나를 막 붕붕붕 띄울 때, 사실 조금 어지러웠다. 얼마나 또 빨리 떨어뜨리려고 이러지? 하면서. 좋으면서 불안감 같은 게 있었다. 이건 거품이야, 너무 취하지 마 이러면서.

쇼 비즈니스 세계에선 정점에 있을 때도 불안감은 여전한가 보다.
사실 2002년 <가문의 영광>으로 확, 사람들이 관심 쏟을 땐 무서운 게 별로 없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를 때였으니까. 그러다가 2004년부터 겸손해져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약간 공백기가 오니…. 나는 그대로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기는 변화가 싫었다. 사람들은 나보다 북한의 저 남자를 더 알고, 인터넷에서도 그 사람 이름만 떠 있고. 이런 변화들이 걸린 거다.

흰색 프린트 셔츠는 msgm by 라움 제품.

이름으로 검색하면 예전과는 다른 뉴스가 쭉!
그냥 가만히 있는데 상황이 이렇게 변하니 되게 재밌더라.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여유 있게 기다리자, 버티자, 잘 버티면 나한테 큰 힘이 되겠지, 하면서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강의하는 게 많은 도움을 줬다. 조급해지고 타협하려고 하면 망가지는 거 같다. 피폐해지고 스트레스 받고.

그러다 보면 무리수를 두기도 하고.
남는 시간 동안 여행을 많이 다녔다. 엄마한테, 넌 병이 있는 거 같아,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외국에 많이 나갔다.

그러려면 물질적 여유가 좀 있어야 한다. 보통 물질적 문제로 무리수를 던지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지점이다.
한꺼번에 재물을 모으는 배우들은 관리가 중요하다. 다행히 난 현명한 엄마를 만나서 재테크를, 하하. 사실 어떻게 보면 배부른 소리를 하는 거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렇게 몇 년 보내니, 뭐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잘 놀았지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타협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선택한 작품이 드라마 <여자를 울려>인 건가?
작품과 배우는 인연이 있어야 하는 건 맞는데, 대본 자체가 많이 끌렸다. 작가님도 잘 쓰시는 분이고 감독님도 잘 찍으시고. 나도 뒷조사를 하니까, 하하. 그동안 왜 늘 여자는 그냥 사랑받는 존재여야만 하고, 갈등이 일어나 문제가 생기면 왜 그걸 해결하는 사람은 늘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다. 얼핏 보면 다 ‘민폐녀’ 아닌가. 코미디냐 멜로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주인공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가 혹은 해결하려고 노력하는가, 하는 부분에 늘 목말랐다. 그런 캐릭터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여성들은 더 깊게 들어가 얘기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번에는 내가 맡은 역할이 형사라서 주먹질하고 툭툭 터는 남성적인 모습과 조용히 더 깊게 들어가 섬세하게 해결하려는 여성적인 모습, 둘 다 있다. 양쪽 면에서 다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캐릭터여서 좋다. 여배우로서 만나기 힘든 좋은 캐릭터다.

아무래도 지금 드라마에 온 신경이 다 쏠리겠지만, 드라마 말고 관심 있는 게 있을까?
내 인생엔 지금 드라마밖에 없다, 하하. 요즘은 진짜 이것밖에 안 하고 살아서. 뭘 먹으면 좀 체력이 좋아질까, 어떻게 하면 아침에 메이크업이 잘 받을까 이런 관심? 하하. 모든 관심이 결국 드라마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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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y 김영준
Stylist 정윤기,이보람
Hair 조재영
Make-up 서희영
Assistant 권승훈

2015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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