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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좋은 은희경

<아레나>와 문학과지성사가 함께하는소설 프로젝트의 일곱 번째 작가는은희경이다. 기쁘다.

UpdatedOn November 10, 2014

푸른색 셔츠 세선 by PBAB, 베이지 색상의 팬츠 노앙 제품.

인터뷰가 끝나고 은희경과 함께 강남 도산대로를 걸었다. 그리고 언젠가 한 선생님이 들려주신 얘기를 그녀에게 했다. “그분이 그러셨어요. 30년을 계속 시를 쓰고 계시다고. 그것이 자신이 성공한 작가라는 증거래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그녀는 나를 보았다. 소녀 같았다.

나는 99학번이다. 국문과 학생이었다. 수업 시간에 몇몇 여자 소설가에 대해 배웠다. 그들을 빼고 1990년대 문학을 얘기할 수 없었다. 그때 내게 은희경이라는 이름은 가시나무 같은 것이었다. 그때 은희경의 소설은 투쟁의 기록같이 느껴졌다. 그것은 감정의 투쟁이었지만 어떤 한 시대가 만든 개인의 감정이었다. 어떤 훌륭한 소설은 경애의 대상이 된다. 어떤 훌륭한 소설은 피부의 일부가 된다. 은희경의 소설은 후자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섯 명의 작가를 인터뷰했어요. 선생님이 일곱 번째인데, 준비하면서 제일 힘들었어요. 공인이시잖아요.
알려진 것과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나는 인터뷰하고 나면 기사를 보지도 않아요. 신인 때는 봤는데… 사람들이 가진 나에 대한 이미지가 내가 생각하는 내 이미지랑 다를 때가 있어요. 잘못 전달된 것도 있고 내가 잘못 말한 것도 있고. 심지어 난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는데 정확히 전달이 안 됐을 때도 있어요.

엄마가 선생님 소설을 좋아하세요. 저도 좋아하죠. 그러고 보니 등단한 지 오래되셨네요.
20년이요. 내가 1995년에 등단했고 조경란이랑 또래 작가들이 2, 3년 안에 다 등단했으니까 큰 차이는 없죠. 내가 후배들이랑 잘 놀아요. 그러다 보니 소설가 김연수가 나 보고 “누나 잘 노네”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왜 그러세요, 선배님” 이랬어요.

아, 김연수 작가가 선배님이죠?
그는 20대에 등단했고 나는 30대에 등단했으니까. 그래서 오래됐다는 것은 좀….

그런데 착한 누나 같아요. 무서운 분인지 알았는데.
내가 감성적이고 마음이 약하니까 소설을 쓸 때는 감성적으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순진하게 안 쓰려고 노력하고.

20년 동안 소설을 썼는데 소설을 더 쓰고 싶으세요? 책도 많이 냈고 상도 많이 받았잖아요.
세상도 그렇고 인간도 그렇고 간단하지 않아요. 그래서 늘 모르겠어요. 모르는 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거예요. 살아가면서… 삶이 익숙해지지 않아요. 고정된 환경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환경도 바뀌니까. 사람은 왜 그럴까, 인생은 왜 이럴까, 이런 것에서 소설이 시작되거든요. 살아가는 한 이야기는 생겨나는 거예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트렌드가 있다고 느끼세요?
트렌드는 못 느껴요. 이런 것을 발견했구나, 라는 것은 느껴요. 요즘 세대라 이런 발상을 하는구나 생각할 때는 있어요. 그래서 후배들 작품을 계속 읽어요. 동시대 감각을 가져야 하니까. 발견하면서 세상을 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단서가 돼서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얼마 전에 나온 새 단편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에 실린 단편 ‘프랑스어 초급과정’에 신도시가 처음 생길 때의 묘사가 나오잖아요. 읽으면서 그 시대를 눈으로 본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쓸 수 없겠구나,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이랬는데 이렇게 변했다는 이야기를 소설에 많이 써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은 그렇게 못 쓰겠죠. 하지만 그렇게 쓸 필요 없어요.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젊은 친구들은 전혀 다른 발견을 하면서 쓸 수 있어요. 그들은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와 다른 것을 쓸 수 있는 거예요.

여유로운 누나 같아요. 관대하고. 꼰대 같지 않고.
작가로서 나는 행운이 많이 따랐고 인정도 받았으니까 그렇게 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사람은 여러 가지 면이 있잖아요.

거울을 보며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할 때 있어요?
예쁘다는 소리를 가끔 들어요. 그러면 내가 소설가로서 남이 볼 때 부러운 점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이겠지, 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몇 년 전에 친구한테 나 진짜 예쁜 거 아닐까? 사람들이 자꾸 예쁘다는 말을 하네, 라고 물었어요.

뭐래요?
사람들이 기준을 낮췄나 보다, 라고.

냉정한 친구네요.
어릴 때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자랐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셨어요. 내가 초라하게 됐을 때는 아무도 예쁘다고 안 했어요. 그래서 알게 된 거지. 무엇인가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예쁘게 보이는구나. 나는 예쁘고 안 예쁘고를 결정하는 것은 정서와 표정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나이 든 사람은.

이 질문을 하면 싫어하실 것 같지만 여쭐게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셨잖아요. 2014년에도 소설을 쓰고 계신데…. 그러니까….
나는 왜 자꾸 그렇게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과거’에 대해 쓰는 게 아니라 ‘시간’ 에 대해 쓰는 거예요. 현재가 없으면 내가 쓰는 이야기는 성립이 안 돼요. 나는 현재진행형 작가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그래서 1990년대 작가라고 그러면… 그 용어에 대한 거부감은 없지만…. 나는 지금도 쓰고 있어요. 나는 그냥 똑같은 소설가예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였다는 영광의 수식이 될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자꾸 1990년대의 틀에 넣어버리니까.

당연히 동시대 작가로서 새 책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가 잘 팔리고 있죠?
다행이죠. 요즘 워낙 다른 책이 안 팔리니까 사람들이 많이 밀어주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지금 이 프로젝트에 내야 할 소설을 쓰고 있어야 하는데, 새 소설책이 나와서 정신이 없어요. 한 달 이상 집중해야 쓸 수 있는데. 하지만 마감은 작가에게 무서운 거니까.

입다, 쓰다, 신다, 들다 중에 어떤 걸 고르셨어요?
신다. 가제는 대용품.

대용품이요?
네. 서정주의 ‘신발’이란 시에서 착안한 거예요. 어릴 때 아버지가 신발을 사주셨는데 잃어버린 거죠. 물에 떠내려간 거예요. 그래서 아마 그 신발은 바다 쪽으로 갔을 것이다, 아버지가 다른 신발을 사줬는데 원래의 신발이 아닌 거고, 나는 나이 들 때까지 대용품을 사서 신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는 내용의 시예요. 좋아하는 물건이 있는데 잃어버려서 똑같은 것을 사도 같은 게 아니잖아요. 모든 것이 대용품이죠. 상실이라는 것은 소유랑 관련이 없어요. 그래서 그런 이미지와 관련된 소설을 쓰고 싶어요. 다른 생각도 해봤어요. 가끔 여행지에서 신발을 살 때가 있어요. 신발이 망가져서 사는 거예요. 그런데 나는 물건을 잘 안 버리거든요. 그런데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상실감이 크더라고요. 갖고 살 것도 아니지만 여행지에서 유난히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사람은 언제 신발을 버릴까, 이런 생각으로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싶어요.

시적이에요.
나는 모든 문학이 시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소설 쓸 때 시의 도움을 많이 받아요. 장편 <소년을 위로해>를 쓸 때 브레히트의 시를 읽었어요.

그런 감성이 소설에서 느껴져요. 아까 감상적으로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셨지만, 새 단편집을 읽으면서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요즘엔 벽돌 같은 소설이 많잖아요. 사람들이 따뜻해졌다고 그러더라고요.

소설이 안 써질 땐 어떡해요?
연애를 써요.

연애요?
이야기가 안 풀릴 때는 연애 사건을 만들어요. 그럼 이야기가 풀려요.

새 책 광고 카피에도 적혀 있지만 ‘은희경’이라는 이름은 브랜드잖아요. 엄마도 알고 아들도 알고 딸도 아는 이름이잖아요. 그런 이름이 되는 건 좋죠?을 읽었던 세대 중에 엄마가 된 사람도 많으니까.

은희경의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죠. 그래서 질문하는 건데요, 원고지 앞에서 소설가는 신이잖아요. 맘대로 창조할 수 있으니까. 물론 여러 제약이 있지만, 상상에 죄를 묻진 않잖아요. 그렇게 스무 해를 사셨으니, 그 신의 지위를 현실에서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그러니까 제 말은 소설로 세계를 만들듯 현실에서 세계를 만들고 싶지 않은지 묻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정치 같은 거요.
다른 소설가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에 내가 소설가라는 인식이 삶의 거의 다예요. 그렇기 때문에 감각을 열어놓고 있다고 할까? 어떤 사회적인 사건을 보면서도 어떻게 소설로 쓸까 생각해요. 실제로 내가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문맹률이 60~70%인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가정하면, 작가로서 영향력을 떨치기 위해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서야 하잖아요. 그런데 나는 그런 운동은 못할 것 같아요. 나는 암흑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 대해 소설을 열심히 쓸 것 같아요. 실제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그건 소설을 쓰기 위한 거예요. 관심이 없으면 소설을 쓸 수가 없어요. 소설가는 동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의 경우는 소설을 통해서 표현하는 거죠. 소설을 쓰는 것에 지장을 받는 어떤 일도 할 생각이 없어요.
지지도 부정도 소설을 통해서 가능한 거예요.

<아레나>와 문학과지성사가 함께하는 이 소설 프로젝트에서 공통적으로 묻고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세요?
그런 것이 있다면 ‘언젠가’로 미뤄두지 않겠죠. 지금 써야죠. 난 살아가면서 떠오르는 질문에 대해 써왔어요. 앞으로도 그것에 대해 쓰겠죠.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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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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