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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옥을 꿈꾼다

사전적인 의미로 사옥은 `회사의 건물(社屋)`을 말하기도, 그냥 `집(舍屋)`을 뜻하기도 한다. 사옥(舍屋) 같은 사옥(舍屋)이 눈에 띈다. 사옥을 디자인한 건축가와 사옥을 짓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일하고 싶고, 쉬고 싶고, 더욱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편안한 공간을 꿈꾸며. <br><br>[2008년 3월호]

UpdatedOn February 24, 2008

Photography 김지태 Editor 이민정 COOPERATION 움 스페이스, 르 씨지엠

꽉 막혀 있는 도산 사거리, 진퇴양난에 빠진 자동차 속에 갇혀 있을 때면 늘상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사무실은 꼭 도시에 모여 있어야 하지?’ 30분에 2천원 하는 회사 주차장에 차를 맡긴 뒤 9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기분은 울적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사무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창문을 열면 레고 블록처럼 밀집된 건물이 아니라 쭉쭉 뻗은 나무가 보이고, 희뿌연 매연 대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 픽사(Pixar) 사무실까지는 아니더라도 어깨가 뻐근하면 잠시 놀이터처럼 기댈 수 있는 공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반갑게도 나는 이와 비슷한 사고를 지닌 공간 디자이너와 으리으리하지 않아도 자신만의(혹은 회사의 특성이 깃든) ‘집’을 지닌 클라이언트를 만날 수 있었다.

case 1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막 공사를 끝낸 이 사옥은 과천으로 가는 길목 ‘선바위’라는 지하철역 근처에 자리한다. 양재역에서 자동차로 딱 10분 걸리는 거리다. 미용 재료를 수입해서 납품하는 회사인 ‘뮤코타(Mucota)’는 다른 곳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서초동 건물에 임대로 있었는데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던 박영진 대표가 숨이 탁 트이는 이 동네에 반해버려 이전하기로 결심한 거다. 30평 내외인 땅에 3층 건물로 올렸으니 공간은 모두 1백 평 정도가 되어 전보다 훨씬 넓어졌고,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사무 공간과는 다른 분위기라 직원들도 방실방실이다. 사장실도 커지고 미팅룸도 여럿 생겼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사장실 뒤 2평 남짓한 공간으로 그가 안내한다. 퀸 사이즈 침대보다 약간 큰 공간일 뿐인데 뭐가 좋다는 걸까.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잖아요. 유리 밖 풍경은 온통 산이고요. 이곳에 흔들의자 하나 가져다놓으면 근사한 카페 같지 않겠어요?” 비싼 땅 사서 잔디 가꾸고 나무 심을 일 없이 봄이 되면 뒷산은 고스란히 그의 개인 정원이 된다.
이곳을 설계한 공간 디자이너 박용철 역시 복잡한 도심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던 차였다. “사옥이 굳이 시내에 있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오피스 빌딩에 꼭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가격도 싸고 출퇴근이 수월한 대지를 경기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어요. 이 사옥을 짓기 위해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더니 저야말로 자연환경이 좋은 이곳에 터를 잡고 싶은걸요.” 설계 비용이 넉넉지 않아 특별한 외장재나 마감재 없이 노출 콘크리트로 지었다. 자칫 폐쇄적이고 삭막한 디자인이 될까봐, 그리고 자연환경을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한쪽 벽면 재료를 유리로 선택했을 뿐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부분에 충실했다. “독특한 콘셉트를 담기보다는 주어진 예산 안에서 최선을 찾고 싶었어요. 땅 모양이 네모반듯하지 않아 처음에 상당히 고민했는데 대지 모양을 그대로 살렸더니 오히려 삼각형의 재미있는 형태가 되었지요.” 고개를 들면 삼각형의 꼭지점이 하늘과 맞닿을 듯하고 1층에서 3층으로 한 번에 연결되는 계단은 올라갈 땐 창문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 덕분에, 내려올 때는 발을 디딜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산세 덕분에 늘 느낌이 새롭다.
사옥 하면 신문사나 대기업을 떠올릴 수 있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매달 꼬박꼬박 지불해야 하는 임대료에 비해 교외에 사옥을 지으면 건물주에게 돈 나갈 일 없으니 멀리 내다봤을 때 오히려 비용 절감이 되고, 전셋집에서 내 집으로 이사갔기에 뿌듯하며 내 공간이라는 생각에 화장실 수도꼭지마저 깨끗이 사용하게 된다. 엘리베이터가 만원이라 발을 종종거리지 않아도 되며 낯선 이들과 어깨를 부딪히는 일도 없다. 창밖에선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 대신 새소리가 들리니 일의 능률도 더 오르지 않을까. 꼭 대한민국이 다 아는 건축가에게 의뢰할 필요는 없다. 디자이너 박용철의 얘기대로 건축물의 전 세계 트렌드는 ‘다양성’이니까. 과거에는 하나의 이즘이나 흐름이 독식했지만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 남이 이렇게 하니까 나도 이렇게 하는 게 예전의 트렌드라면 남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한다,가 지금의 트렌드인 거다. 그런 의미에서 뮤코타 사옥은 군더더기 없이 소박하지만 대지의 제약과 비용의 제한을 풀어가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했다.

case 2
포시즌 호텔? 포시즌 오피스!

전 세계 74개 도시의 체인망을 지닌 럭셔리 호텔의 최고봉 ‘포시즌’이 부럽지 않겠다. 이 사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계절의 아름다운 변화를 지켜보면서 일하는 공간이니까. 무슨 말인고 하니, 게임 개발 업체인 A 회사는 삼성동 선릉공원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6층에 오밀조밀 사무 공간이 모여 있는 건물을 A 회사가 사버리면서 전혀 다른 건물로 변신시켰다. 리모델링을 맡은 르 씨지엠의 구만재 소장은 클라이언트로부터 이런 부탁을 받았다. “선릉공원을 맘껏 감상할 수 있도록 발코니를 마련해주세요. 밤낮으로 일하는 젊은 남자들이 옛것을 보며 담배도 태우고, 한숨도 쉬고, 문화재에서 아이디어도 얻게 말예요.”
애초 성냥갑 형태의 이 건물은 까치발로 디뎌야 겨우 하늘을 볼 수 있는 창문 몇 개를 제외하고는 온통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디자이너는 제일 먼저 선릉공원 방향의 벽면을 부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알다시피 건축 리모델링은 원래 건물에서 골격은 그대로 남겨둔 채 약간의 형태와 껍데기를 고치는 작업. 쉽게 말해 헌집을 새집으로 바꾸는 거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뼈대를 바꿀 수 없다는 한계 속에서 새로운 디자인 요소를 덧붙여야 하지만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장점이 꽤 많다. 철거 비용을 아낄 수 있고 법적인 혜택(새로운 건축법상 신축할 경우 평수에 따라 주차 공간 또한 늘려야 한다)도 있다. 게다가 선릉이라는 문화재를 끼고 있는 터라 번쩍번쩍한 건물이 공원의 풍경을 막을 염려도 없다(문화재 주위에는 높은 건물이 들어서지 못하게 되어 있단다). 하여 A 회사도 리모델링을 택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모이는 열정적인 회사라고 해서 역동적이거나 사이버틱한 이미지를 택한 건 아니었다. 되려 야근이 잦은 이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자연’에 중점을 뒀다.
“공원 방향으로 오픈했더니 일단 빛이 들어와서 공간이 몰라 보게 환해졌습니다.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그렇듯 이곳도 천장이 낮아서 답답했는데 이참에 뜯었더니 노출 천장의 느낌도 새롭고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옥상과 발코니를 설치하여 차 마시는 공간으로 꾸며보았습니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강남에 이런 곳이 다 있구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자연의 사계절을 음미할 수 있는 곳, 날씨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울에서 어디 흔한가요?”
이러한 분위기는 공간 내부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철이나 알루미늄 소재 대신 목재를 주로 사용했고 눈을 피로하게 하는 원색으로 요란하게 치장하지도 않았다. 백 명이 훨씬 넘는 남자 직원들, 그중에서 20~30대가 대부분인 이들에게는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많게는 하루 20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디자이너의 생각은 지혜롭기만 하다.

case 3
사옥이 도시를 바꾼다

베이커리, 실내 포장마차, PC방, 슈퍼마켓, 은행 등 각종 상업 시설이 모여 있는 경기도 부천의 신시가지. 소아·청소년 병원을 운영하던 김승주 원장은 그곳의 건물 하나를 매입하면서 재미있는 상상을 했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 마을을 어디 한번 바꿔보자.’ 그리고 1층의 베이커리(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빵집은 이 지역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해왔다)만을 그대로 남긴 채 건물 전체를 병원으로 만들면서 사무실, 갤러리까지 집어넣었다.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그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덕분에 구태여 다른 사무실을 임대하기보다 즐겁고 유익한 쓰임새를 제공하고 싶었던 이유다.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켜보고 싶었다. 괴짜스러운 구석이 엿보이는 그의 의견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와 맞물려 새롭게 탄생됐다.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 사진을 비교한다면 깜짝 놀라 무릎을 칠지도 모른다.
“모퉁이에 위치한 기존 건물은 전체적으로 사다리꼴 덩어리에 창문이 돌출된 형태였어요. 돌출된 창으로 만들어진 들쭉날쭉한 입면을 반듯하게 정리한 뒤 이번에는 돌출된 창의 볼륨을 반전시켜보았지요. 이렇게 반전된 창은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교회를 연상시키죠. 반복과 변형을 통해 완성한 크고 작은 창들이 자유로운 인상을 줍니다.” 리모델링을 담당했던 김선국 소장의 얘기다. 외관은 노출 콘크리트와 우드 패널로 감싸 한결 현대적인 느낌으로 완성됐다.
실내로 들어가보자. 외부와 내부가 동시에 디자인되었으니, 외부에서 보기에 들어간 창은 실내에선 반대로 보일 수밖에 없다. 실내에서 반전된 돌출 창으로 바라다보는 조망은 넓은 창틀로 인해 한결 깊숙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병원을 찾아오는 어린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가죽으로 마무리된 가구를 고른 배려도 고맙다. 나무와 거울로 대비되는 벽면과 진료실 벽면의 둥근 창은 변화와 재미를 더하는 요소들.
뒤늦게 들은 얘기로는 일년도 채 되지 않은 이 병원이 클라이언트의 소원대로 부천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발길이 뜸했던 거리가 강남역 사거리만큼 환해져온다는 소문도 들린다. 직원과 환자는 물론 거리 디자인까지 고려한 클라이언트는 드물다. 그래서 더욱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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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김지태
Editor 이민정
COOPERATION 옴스페이스,르씨지엠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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