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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의 프리랜서

기적적으로 아침 8시에 일어나 어젯밤 꼭지돌게 소주 퍼부었다고 온몸으로 증명하며 만원버스에 탈 때마다 드는 생각. `나 자유로 돌아갈래.` 여기, 진실로 자유를 만끽하며 자신의 일을 즐기는 남자들이 있다. <br><br> [2006년 8월호]

UpdatedOn July 20, 2006

50대 애널리스트, 박윤수(1949년생)

에디터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일종의 ‘감인안’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박윤수와 에디터의 인연은 올초 바이크를 타면서 시작되었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나의 ‘감인안’을 발동했고, 감정 결과는 ‘진짜’였다. 박윤수의 아버지는 유명한 시인 박거영이다. 소탈한 그의 기질은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것일까?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집에 갔을 때, 문 앞에서 이상한 팻말을 발견했다. ‘세보르가’라는 작은 나라의 명예 영사관이라는 표시였다.

과연 이 남자는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색다른 경험을 했을까? 이 남자가 점점 더 궁금해 졌다.

정확히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일종의 투자 애널리스트다. 1990년 인터넷이 막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 녀석을 접하자마자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장 하고 있던 레스토랑 사업을 접은 후 컴퓨터 4대를 집에 들여놨다. 다행히 전공이 경제학이어서 기초 지식은 있었고, 투자 직감이 뛰어난 편이었다. 나의 사이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가입되어 있고, 나에게 자문과 투자분석을 의뢰하기도 한다. 나 스스로 투자하기도 하고….

솔직히 주식이니 투자니 하는 말은 아직은 내게 와닿지 않는 소리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달라.
나의 사이트에 방문한 적이 있는가? ‘www.seouljoe.com’. 이곳이 나의 홈페이지인데, 이곳에서 나는 유럽과 미국 그리고 동남아 쪽 증시현황을 분석한다. 즉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어떤 종목에 얼마만큼 투자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구미 쪽 사람들인데 신원을 밝힐 수 없다. 이해해 달라.

한국인도 있는가?
한국인 클라이언트도 4명쯤 있다.

당신은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프리랜서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은?
하루 3시간. 그 이상은 일하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은 나와 가족에게 투자한다.

하루 2~3시간 일하고 남는 많은 시간은 뭘 하며 보내나?
취미를 묻는 것인가? 뭐 별 게 있나? 골프, 승마, 그리고 김형이 알다시피(그는 에디터를 그렇게 칭한다) 바이크, 젊을 때 멕시코에서 배운 그림이나 여행 등이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취미는 다 가졌다. 대단한 부모를 둔 덕이 아닌가?
아버지는(박거영) 시인이셨다. 반정부 인사였기 때문에 돈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리고 난 돈 많은 부모 덕에 거들먹대는 인간형을 제일 싫어한다. 멕시코에서 살 땐 병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 적도 있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워낙 발로 뛰어다녀 굳은살이 많았다. 하루는 히터에서 그 굳은살이 타고 있는데도 그걸 모르고 계속 일을 한 적도 있다. 아직도 그 흉터가 남아 있다.

당신은 같은 잡지에 나와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당신 같은 남자도, 베네티 페어 같은 잡지도 별로 없다. 왜일까?
글쎄, 먼저 젊을 때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 난 승마를 좋아했지만 돈이 있어서 말을 탄 게 아니다. 막무가내로 목장에 갔었다. 지금은 일을 안 한다고 김형이 타박하지만, 젊을 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인생에는 3번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 그 기회를 움켜잡는 건 준비된 자만이 할 수 있는 거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그 준비에 조금 소홀한 것 같다.

페라리와 포르쉐, 람보르기니 그리고 2대의 할리 데이비슨을 가진 남자에게 노후대책을 묻는 건 우스울 것 같고, 특별한 롤 모델이라도 있는가?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 그들의 돈 버는 방식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맘에 든다.

기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웃음.

40대 잡지 발행인·포토그래퍼, 이성곤(1964년생)

이성곤은 레스토랑과 바를 주요 콘텐츠로 하는 <바앤다이닝>의 발행인이다. 시쳇말로 젊고 성공한 CEO일 뿐 결코 프리랜서는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프리랜서의 표본과 같은 삶을 살아온 사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어느 조직에 적을 두지 않았다고 하는 남자, 자신의 최우선 인생 목표가 ‘HAPPY’라고 잘라 말하는 명쾌한 인생관. 인터뷰 내내 느꼈지만 그는 에디터가 만나보지 못한 신인간형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별스러움이 아닌,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매력으로 비쳐졌다.

<바앤다이닝>의 발행인에다 의 실질적인 발행인이기도 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테고, 그럼 자유 시간이 거의 없는 거 아닌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난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하는 워커홀릭인데 - 주위의 평가가 그렇다 - 그래도 하나도 힘들지 않다. 나에겐 일하는 게 곧 유희, 행복이기 때문이다. 상투적으로 들리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만약 서류를 본다거나, 결재한다거나 하는 전통적인 업무 형태라면 하루에 1시간쯤 일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사업 파트너와 함께 취미활동을 하는 것도 일 아닌가? 예를 들면 얼마 전 바이크를 함께 즐기다 루이까또즈의 <루이스 클럽>이라는 매거진을 발행하기로 했다. 대개 이런 식이다.

왜 직장에 들어가 평범한 생활을 하지 않았나?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 것 같은데… 내 생활이 좋았고, 나름대로 나의 행복 추구권을 누리면서 살아왔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게 큰 힘이 되었다.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데 가장 힘든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경제적 문제 아닐까? 20대엔 몰라도 30대에 들어서면 여러 가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이상과 다른 일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점 안정적인 직장을 갈망하게 되고…. 

그렇다. 돈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면, 예를 들어 부모가 부자라든가 해야 프리랜서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고소득 프리랜서들이 얼마나 많은지 당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내 말은 그런 실력을 기르기까지가 힘들다는 것이다. 듣기에 따라 재수 없을 수도 있지만, 프리랜서는 일종의 한량이다. 젊을 땐 이것저것 큰일을 따내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고…. 그 시절엔 자신의 철학을 지키느냐가 중요하다. 돈 때문에 꺾이면 그 분야에서 인정받기 어렵다. 젊을 때 돈이 안 되는 창의적인 작업을 많이 해야 실력을 쌓을 수 있다.

당신의 경우는 어떤가?
난 다행히 어느 정도 여력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 것들이 클라이언트들에겐 일종의 여유로 비쳐지기도 했다.

아직은 젊은 나이다. 국민연금 하나 붓지 않았을 테고, 노후 대책은 생각하고 있나?
군에 있을 때, 눈을 다쳐 국가유공자가 됐다. 한 달에 80만원씩 꼬박꼬박 보훈처에서 돈을 넣어준다. 내가 60세가 되면 지금 환율로 2백만원으로 오른다고 한다. 비행기도 반 값이고, KTX는 공짜다. 이 정도면 훌륭한 노후 대책 아닌가?(웃음)  바보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난 사업을 할 때 렌트를 하지 않는 철칙이 있다.
지금 있는 사무실도, 스튜디오도 모두 렌트가 아니다. 만약 잘 풀린다면 어릴 때부터 소원인 필리핀의 무인도를 사서 그곳에서 살고 싶다.

필리핀의 무인도? 얼마쯤 하는지 알고 있나?
몇 년 전 시세로 60~70억 정도였는데 지금은 1백억쯤 하지 않을까? (웃음).

30대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 유대영(1974년생)

젊은이들 문화의 총 집합소 역할을 하는 홍대 거리에 유대영의 사무실을 겸한 작은 주거공간이 있었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평일 오후. 또래 젊은이들이 상사 눈치 봐가며 땀흘릴 시간에 그는 거리를 유유자적하며 산책하고 있었다.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들었다. 듣기에 생소한 직업인데….
편의상 그런 직업명을 붙였다.
내가 일인기업이기 때문에 뭐라 붙이든 상관 없지 않은가? 애니메이션에 관한 모든 것에 관여하고 있다.

어떤 계기로 프리랜서가 되었나?
처음엔 조그만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런 직장생활이 아니었다. 창의성을 좀먹어간다는 생각이 들어 미련 없이 회사를 나왔다. 지금 생활에 100% 만족한다.

다양한 작업을 해왔는데?
프리랜서라고 해서 놀기만 하는 건 아니다. 또 생각보다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일 땐 회사 다니는 또래보다 훨씬 바쁘다. 다양한 분야의 클라이언트를 만난다. 프리랜서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 시간에 이렇게 유유자적할 수 있는 청춘이 몇 명이나 될까?
프리랜서가 좋은 게 바로 그 점이다. 내가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 하지만 결과물이 날 말해주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담도 만만치 않다.

취미생활은 무엇인가?
스노보드, 바이크 등이다.

도대체 바이크는 프리랜서의 필수 조건인가?
지금까지 만난 전 세대의 자유인들이 바이크를 좋아하니…. 아무래도 남자의 로망 아닐까? 그 바이크가 BMW든, 할리 데이비슨이든, 일제 레플리카든, 아니면 스쿠터든 말이다. 원래 프리랜서란 영혼이 자유로운 존재라서 갑갑한 차보다는 바이크를 좋아하게 돼 있다.

지금까지 만난 40~50대 프리랜서들은 모두 너무 대단한 이력의 소유자들이어서 거리감이 있었는데, 그래도 당신은 내 또래이기도 하고….
만만하다는 말인가?(웃음) 프리랜서는 대단한 이력을 소유해야만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취직을 못한다고 도피처로 프리랜서의 삶을 선택한다면 십중팔구 패배자가 될 거라는 점이다. 내가 하는 일이 모두 나의 커리어가 될 수 있다. 난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최선을 다한다.

나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특히 ‘나무를 심는 남자’ 등과 같은 유럽 쪽 애니메이션을…. 고수를 만났으니 한수 배워보자.

나 역시 유럽 쪽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디즈니처럼 선악이 뚜렷한 건 별 감흥이 없다. 일본 쪽 애니메이션들도 점차 유럽의 정서를 닮아가는 데, 시간 나면 ‘고래의 도약’이라는 작품을 꼭 감상해봐라.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 유럽 쪽 작품인 줄 알았으니까….

한 달 수입을 밝힐 수 있나?
일정치는 않지만 4백~5백만원 정도? 그 정도는 돼야 생활이 가능하다.

한 달에 4백~5백만원? 적지 않은 수입이다.
(웃음).

노후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우선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나중엔 종합 애니메이션을 감독하고 싶다. 그게 꿈이다. 그 꿈을 위해 지금은 투자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 같은 곳에서 일한다면 프리랜서의 삶을 포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브리 스튜디오는 국내엔 없다.

20대 프로덕트 디자이너, 조수빈(1982년생)

그와 약속한 저녁 8시가 한참 지난 시간, 비는 추적추적 오는데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비를 맞으며 생각했다. ‘요즘 젊은 놈들이란…, 이래서 어릴 땐 조직생활을 해봐야 해’그런데 30분 정도 지나자 할리 데이비슨의 대형 바이크를 타고 약속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조수빈은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하긴 서울의
금요일 퇴근 교통상황은 세계에서 최악이라 하지 않은가?

정확히 하는 일은 무엇인가?
프로덕트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지만, 사실 하는 일은 수십 가지다. 클럽에서 VJ로 일하기도 하고, 신촌 몽환이라는 유명한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기도 했다. ‘Caeruleum Juice’이라는 단편영화에 배우로 출연도 했고, 서울컬렉션에서는 모델로 3시즌 정도 일하기도 했다. 현재 하는 프로덕트 디자인은 계약상 밝힐 수 없다. 이해해달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절대 하지 않고, 놀고 싶을 때 노는 주의다.

조직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는가?
결단코 없다. 조직의 틀에 날 맞추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난 일 년에 한 번은 한두 달 정도 여행한다. 회사에 들어가면 불가능한 일 아닌가? 하지만 나이가 들면 그땐 모르겠다.

아직은 나이가 어려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어려울 텐데, 어떤 식으로 클라이언트와 접촉하는지.
내 경우 인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재작년 캐포츠 브랜드 EXR의 스노보드 대회의 촬영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우연찮게 그 대회에 클라이언트가 오면서 VJ 계약이 성립됐다. 안면도 축제의 경우 특이한 놀이판을 만들어보려 했는데, 의외로 참석자들이 호응해줘 성공했다. 운 좋게도 돈이 떨어질때 쯤이면 일이 들어온다. (웃음).

스팟으로 작업을 하면 수입이 원활하지 않을 텐데….
지금은 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 그런 것들이 내게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전공을 한 무용도, VJ로서의 경험들도 그리고 무대 감독 이력도 결국에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큰 그림에 작은 퍼즐이 될 것이다.

그 큰 그림이란?
온갖 미디어를 동원한 공연을 기획하고 싶다.

노후 대책은 생각하고 있나? 하고 있다면 어떤 식으로?
지금 생활하는 덴 부족함이 없다. 아직 몇 십 년 후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지만, 지금은 사람이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배울 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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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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