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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음식은 더는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조리가 잘된, 혹은 향신료가 지나치게 가미된, 혹은 전날의 밥상과 다를 바 없는 `그 밥에 그 나물`인 메뉴를 선보인 수백 개 브랜드들이 차려낸 `정찬 코스`를 맛보는 것이 주업무였던 이 한 달, 기자들의 밤은 그 누구의 낮보다 분주하고 화려(?)했을 것이다. <br><br> [2007년 9월호]

UpdatedOn August 21, 2007

오곡백과처럼 풍성한 정보가 쏟아졌던 한 달이었다. 곳간에 쓸어 담기가 무섭게 또 다른 품종들이 재배되고 수입되어 산처럼 쌓였다. 아무리 대파 뿌리처럼 싱싱한 기억력을 자랑한다 해도 좀 무리다 싶을 만큼, 정보의 과잉이었던 한 달. F/W 시즌의 포문을 여는 9월은 늘 이런 식이다. 눈과 귀로 입력한 테이터를 미처 뇌 안에 비축할 틈이 없을 만큼,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기억력은 숯가마의 숯처럼 사그라져만 가는 데(이건 특히 내게 해당하는 말이다.) 이러다 기자들의 뇌가 두부나 묵처럼 으깨지는 건 아닌지 걱정될 지경이었다. 눈치 빠른 브랜드들이 이런 기자들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다. 앞 다투어 목청을 높이고, 자극적인 몸짓으로 기자들을 자신만의 식탁으로 초대해 ‘ 오늘의 메뉴’가 최고임을 강조한다. 트렁크 쇼를 곁들인 매장 초대, 술과 음악과 파티를 동반한 패션쇼, 우아한 코스 요리를 대동한 디너쇼, 비행기 티켓에 호텔 숙박까지 제공하는 본사 방문 프레젠테이션, 사무실 방문 마술쇼, 각종 캠페인과 전시회… 때로는 그 진수성찬에 목이 멜 정도지만 기자의 본분이란 정성껏 차려진 음식을 성의를 다해 맛보는 데 있으므로 꾸역꾸역 정보를 밀어 넣는다. 먹고 토하기를 반복-<아레나>의 가시권 안에 있는 남성 패션 브랜드만 하더라도 2백여 개에 달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다른 음식은 더는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조리가 잘된, 혹은 향신료가 지나치게 가미된, 혹은 전날의 밥상과 다를 바 없는 ‘그 밥에 그 나물’인 메뉴를 선보인 수백 개 브랜드들이 차려낸 ‘정찬 코스’를 맛보는 것이 주업무였던 이 한 달, 기자들의 밤은 그 누구의 낮보다 분주하고 화려(?)했을 것이다. 이런 기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기에 앞서 나는 6개월에 한 번씩 신 메뉴를 개발하는 각 브랜드의 조리장과 이를 데커레이션해 밥상을 차려내는 수많은 스태프들의 손끝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아, 이 모든 과정에 뒷돈을 대는 각 브랜드의 사주에게도 경의를! 혹자는 매해 매월마다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잡지 기자의 노고를 치하하지만 우리의 힘은 각 브랜드들이 시즌별로 제시하는 구체 트렌드에 근거한 것이니 그 부분의 공을 먼저 살펴야하겠다.  옷과 그와 관련한 소품은 오래 묵힐수록 먼지만 더하는 데다,물론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빛을 보는 것들이 있기도 하나,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폐기된다.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세일이라는 낙인이 찍혀 퇴물 취급을 당하는 게 부지기수다. 결국 브랜드들은 6개월에 한 번씩 사활을 건 무기를 장착하고 공포의 시식대에 투신하는 거다. 이를 맛보고 평하는 기자의 혀끝은 때론 비정하기까지 하다. 브랜드와 매체와의 관계는 공존과 상생이 원칙이지만 기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브랜드, 혹은 기자의 눈에 들지 않는 상품은 비인칭적 모독을 감수해야 한다. 간혹 독자들은 ‘악평이 없는 그저 호평으로 일관하는 패션지’라는 오해의 눈으로 우리를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게 있다. 악평을 받아 마땅한 것들은 이미 기자의 심미안에 의해 걸러지고 파기되어 지면에 실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렇게.
물론 가치를 찾아내고 부여하는 행위에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다. 패션에 대한 지식과 패션 산업에 대한 애정, 공정한 가치 평가의 기준과 그걸 지켜내려는 자존심. 이로써 독자들의 합리적인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데 대한 사명감. 대단히 난해하고 육중한 무게의 일임에는 분명하다. 이를 위해 기자들은 시간이 허락되는 한 최선을 다해 골고루 ‘맛보기’를 원칙으로 할 수밖에 없다. 과식, 소화불량에 토악질이 날지라도, 그게 일이니 어쩌겠는가. 이왕이면 잘근잘근 씹어 온몸에 영양소가 고루 흡수되도록 하는 게 몸과 마음에 모두 좋겠다. 가끔 입에 맞는 음식만 찾아다니는 기자를 보게 된다. 자신의 취향만을 고려한, 객관적 비교와 분석이 부족한 오만한 권고의 위험을 모르는 혹은 모르는 척 하는 부류다.  하긴 편식하면 키가 안 큰다는 걸 아직 어려서(?) 모를 수도 있겠다.
허나 엄한 어미를 만난 <아레나> 기자들은 편식하지 않는 강한 위장을 가졌다. 이달 평소보다 곱절이나 많은 음식을 골고루 맛본 <아레나> 기자들은 평월보다 무려 1백 페이지나 많은 지면에 그 맛을 소개했다. 미각을 잃지 않도록 혀를 물로 헹궈가면서 가치를 평가한 제품들이니 당신 역시 잘 닦인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쥐고 천천히 음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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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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