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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있는 여자 이영애

배우 이영애가 3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다. 대체 불가한 존재감의 그녀가 다시 한번 파격 도전을 감행했다.

On May 19, 2025

연기 갈증 풀어준 연극 <헤다 가블러>

필모그래피는 한 배우의 흔적이다.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맡은 작품과 배역 속에서 배우가 원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 배우 이영애의 필모그래피는 대체로 시대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캐릭터로 채워져 있다. 그녀는 1990년 CF <투유 초콜릿>으로 데뷔 후 배우로 전향해 김수현 작가의 SBS 드라마 <불꽃>(2000)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신여성 ‘박지현’ 역을 맡아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 후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는 남성 중심 서사에서 중심을 잡는 냉철한 여성 법무관 ‘소피’ 역을, 영화 <봄날은 간다>(2001)에서는 신비롭고 매력적인 여자 ‘은수’ 역을, MBC 드라마 <대장금>(2003)에서는 총명하고 당찬 의녀 ‘서장금’ 역을 맡아 연이어 히트하며 흥행 보증수표이자 실력파 배우로 거듭났다.

단아한 역할로 인기의 정점을 찍은 순간 그녀는 예측 불가의 선택을 한다. 박찬욱 감독과 만나 영화 <친절한 금자씨>(2005)에서 딸을 볼모로 자신을 유괴범으로 만든 ‘백 선생’(최민식 분)에게 복수를 꿈꾸는 ‘이금자’에 완벽 빙의해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결혼과 출산 후 복귀한 영화 <나를 찾아줘>(2019), JTBC 드라마 <구경이>(2021), tvN 드라마 <마에스트라>(2023)에서도 역시나 도전으로 통할 법할 캐릭터를 맡았다.

‘산소 같은 여자’보다는 ‘파격’, ‘도전’이란 수식어가 어울리는 이영애가 32년 만에 연극 <헤다 가블러>로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난다. 그녀는 권태로운 일상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자기 파괴적 면모를 보이는 복합적 캐릭터 ‘헤다 가블러’ 역을 맡아 섬세한 내면 연기를 펼친다. 또 한 번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평을 받는 이영애의 이야기를 담았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개관작 <짜장면> (1993) 이후 3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습니다.
<짜장면>은 20대 때 출연한 첫 작품이에요. 배우이자 제작팀 역할을 하면서 지하철역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포스터를 붙이고 했었는데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어렸지만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 항상 연극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었죠. 여러 기회가 있었지만 타이밍을 잡지 못하다 좋은 기회로 무대에 오르게 됐어요.

오랜만에 선 연극 무대는 어떤가요?
대사가 많아 힘든 면도 있지만 배우로서 보여줄 것이 많아 몇 배로 즐거워요. 연극은 드라마나 영화와 달리 시간적 제약이 덜해 배우들과 대화하며 작품을 만들어가는 작업 과정이 재밌어요. 그래서 연극 무대는 배우로서 모든 걸 풀어낼 수 있는 장인 것 같아요.

많은 작품 중 왜 <헤다 가블러>였나요?
대학원에서 연극 공부를 할 때 지도교수님에게 “연극을 하게 되면 <헤다 가블러>를 하고 싶다”고 했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역할을 해보고 싶던 찰나에 딱 ‘헤다’를 만났어요. 자유를 갈망하는 헤다의 고뇌와 갈등, 질투와 욕망 등 많은 감정을 보여주고 비극으로 끝나는 작품이라 ‘여자 햄릿’이라고도 불리죠. 50대가 된 지금, 여자로서 배우로서 다양한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캐릭터는 헤다라고 생각했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준 것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헤다 가블러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정답이 없는 여자요. 1막부터 4막까지 퇴장 없이 작품을 이끌어가는데 하나의 색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인물이에요. 외면은 우아하지만, 내면에 숨겨진 불안과 욕망, 파괴적 본성을 지녔죠. 우리가 기존에 알던 헤다 가블러는 무거운 분위기인데, 색깔을 바꾸고 싶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어요. 대본을 읽을 때마다 캐릭터가 다르게 느껴지는데, 헤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희열을 느껴요.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군요.
만약 제가 20~30대였다면 캐릭터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며 여성으로서 느낀 다양한 감정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돼요. <헤다 가블러>에는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시대나 성별을 떠나 현대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학문에만 관심 있는 남편, 욕망을 일깨우는 옛 연인, 질투심을 자극하는 친구, 가부장적 가치관을 강요하는 시고모까지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죠.

헤다의 인생엔 여러 갈등 요소가 있습니다. 반면 인간 이영애의 삶은 어떤가요? 갈등이 많지 않죠?(웃음)
제 삶에도 큰 갈등, 작은 갈등, 여러 갈등이 있죠. 다른 부부처럼 부부 사이의 다툼도 당연히 있고요. 저희 부부도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워요. “문을 닫았어? 안 닫았어?” 같은 것들이요. 괜히 심심하니까 시비 거는 거예요. 옆에서 보면 사랑싸움이라고 하는데 저희는 진지해요.(웃음)  

“그동안 좋은 작품을 많이 했지만 배우로서 목마름이 있었어요.
엄마가 되고 50대가 된 지금 여자로서, 배우로서
다양한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캐릭터가 ‘헤다’였어요”


20대 때 시행착오가 내게 준 것

필모그래피 속 캐릭터들은 어떻게 보면 전통적인 여성상은 아닌데, 데뷔 초엔 CF에서 청초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당대 최고 인기 배우였던 유덕화와 함께 <투유 초콜릿> CF에 출연했는데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광고 계약 조항에 “외부에 모델임을 밝히지 말라”는 내용이 있어 광고가 송출될 때 백화점에서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판매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죠. 손님이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고 하면 “아니에요”라면서 모른 척했어요.

연예계 진출에 대한 꿈은 없었나요?
보수적인 부모님 아래서 자라 연예인이나 배우는 저와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다가 대학 졸업 후에 데뷔했어요. 소속사가 없어서 메이크업 박스와 의상을 직접 들고 다니며 활동했는데 집으로 캐스팅 연락이 왔어요.

그러다 어떻게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거예요? 데뷔 초엔 한 해 동안 드라마 4개에 출연한 적도 있어요.
연기 전공이 아니라 고민했지만 하면 할수록 연기가 재밌었어요.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것 같아요. 드라마 <동기간>(1996)에서 일진 역할도 하고,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1997)에서 작부 역할도 했어요.(웃음) 그래서 20대 때 굴욕 영상이 많죠. 한번은 방송국에서 한 기자가 저를 보고 손을 잡더니 “괜찮으세요? 체력이 대단합니다”라고 한 적도 있어요. 부모님이 배우 활동을 반대하셔서 MC를 하려고 오전 6~8시에 뉴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오전 4시에 일어나서 메이크업하고 신문을 읽고 라이브 방송을 한 다음에 주말 아침 드라마를 촬영했었거든요.

왜 그렇게 열심히 했어요?
마음이 급해서 무엇이든 빨리 이루고 싶었어요. 그때 제 눈빛을 보면 이글이글 타올라요. 촬영 후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에 가면서 백미러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 스스로 ‘잘될 거야’라고 다독였던 기억이 선명해요. 지나고 보니 20대 때 시행착오를 겪은 덕에 30대에 좋은 작품을 만났어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드라마 <대장금> 같은 좋은 작품들이 한 번에 뚝딱하고 떨어진 게 아니라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살아온 결과물이었던 거죠.

한류 스타, 톱스타가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군요.
신인 때 한 감독님이 드라마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제게 다른 역할을 제안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이 아닌 앞으로 저의 가능성을 보고 다시 생각해달라”고 설득해 다시 주인공이 된 적이 있죠. 그땐 ‘나는 왜 안 돼?’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사람마다 꽃피는 시기가 다른 것 같아요. 기회를 기다리며 얼마나 준비하는지에 따라 다른 거죠.

이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어땠어요?
영화업계에 진출하는 발판이 된 작품이지만 그 당시엔 저한테 과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김수현 선생님의 드라마 <불꽃>에 출연 중에 촬영해 연기적으로 아쉬움도 있었죠. 그렇지만 행복했어요. 그 후 영화 <선물> <봄날은 간다>에 출연했는데 고맙게도 반응이 좋았어요.

그 후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선택했습니다. <대장금>이었죠.
<봄날은 간다> 후에 영화 시나리오가 주로 많이 들어왔는데, 드라마 <대장금> 대본도 있었어요. 대본을 보는데 500년 전 인물인 장금이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제게 말을 거는 느낌이 들었죠. 그런 사람을 제가 이 세상에 알린다고 생각하니 너무 희열이 느껴지는 거예요. 한 달 동안 궁중 요리를 배우며 역할을 준비했어요.

<대장금>은 최고 시청률 57.8%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죠. 드라마 방영 당시 인기를 실감했나요?
전혀요. 장금이는 매일 실수하고 일을 저지르니까 정말 힘들었죠. 드라마가 끝나고 세상에 나왔는데 사람들이 저를 보는 눈빛이 180도 달라져 있었어요. 동남아시아에서 순회공연 요청도 왔었고요. 인기에 감사해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며 선택한 게 영화 <친절한 금자씨>였어요.

그때부터 배우 이영애에게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 같아요. 선글라스와 빨간 아이섀도는 상징적 이미지로 남았죠.
‘대장금’이라는 캐릭터를 깨고 싶어 재밌게 촬영했죠. 지금은 선글라스만 써도 “금자씨 같다”고 하니까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제약이 생겨요. 하지만 평소에 하지 못하는 걸 배우로서 풀 수 있는 점이 좋아요.

톱스타이자 원조 한류 배우로서 편한 역할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배우 이영애는 늘 어려운 선택을 하는 것 같아요.
헤다 가블러가 극 중에 이런 말을 해요. “지루하니까.”(웃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 배우로 돌아왔을 때 흔들리지 않도록 뿌리를 깊게 내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20대 때부터 열심히 했어요. 또 색다른 캐릭터를 시도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캐릭터가 재밌고 오래 기억에 남아요.  

“아이들에게 고향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경기도 양평으로 내려갔어요.
텃밭에서 수확한 재료로 음식을 해 먹으며 아내, 엄마 역할에 최선을 다했죠.
어느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내가 양평으로 간 이유

결혼 후엔 배우로서 삶을 뒤로하고 아내, 엄마로 살았습니다. 어땠나요?
경기도 양평에 살면서 직접 농사지은 식재료로 음식을 해 먹으며 육아에 전념했는데 행복했어요.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만약 제가 40대 초반이었다면 아이를 하나 더 낳았을 것 같아요.

왜 양평으로 내려갔나요?
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개구리 소리, 개울 소리가 기억나거든요. 우리 아이들에게 고향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기억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저 역시 연기하면서 바쁘게 살았던 삶을 디톡스하고 싶었고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빗소리를 들으며 걷곤 했죠. 시골에 내려가 살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엄마 이영애의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합니다.
일이 없을 땐 아이들과 함께해요. 집에 있으면서 쌍둥이들의 학원 스케줄을 짜고, 라이딩을 직접 하며 딸과 데이트하죠. 화가 날 땐 아이들에게 화도 내고요.(웃음) 그래서 쌍둥이들이 “우리 엄마는 이중적”이라고 해요. 일이 없을 땐 평범하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영애의 꿈은 무엇인가요?
모든 역할이 조화로운 것이요. 이영애에겐 배우, 아내, 엄마라는 여러 역할이 있어요. 제게 주어진 역할을 균형 있게 맞춰가고 싶습니다. 


연극 <헤다 가블러>

세계적인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고전 명작 <헤다 가블러>는 사회적 제약과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를 심도 깊게 탐구한 작품이다. 이영애, 김정호, 지현준, 백지원 등이 출연한다.
기간 ~6월 8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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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취재
김지은 기자
사진
LG아트센터 제공
월간 우먼센스
디지털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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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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