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안이가 잠든 저녁 시간이었다. 아내가 오늘 하루 엄청 힘들었다며 공연 마치고 온 나에게 잘 하지 않던 푸념을 늘어놓았다. 궁금해서 무슨 일인지 들어봤더니, 요즘 부쩍 성장한 주안이의 체력과 활동량을 맞춰주고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평소 손을 잡고 걸어 다닐 때 주안이는 자신의 템포에 맞추라고 당기거나 매달리거나, 몸으로 부딪치면서 종종 애정 표현을 한다. 그럴 때도 체력이 쭉쭉 떨어지는데, 최근 몇 주일 동안 학원과 축구장, 게다가 박물관과 미술관까지 추운 날씨에 혼자 데리고 다녔기에 체력에 한계가 왔을 법도 했다. 아내는 주안이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아내 왈, 밥을 안 먹어서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며 애쓰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 웃기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예능에 출연했던 터라 <오! 마이 베이비> 영상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화면을 보며 새삼 평범하게 성장 중인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고, 또 서로를 다독이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확실히 아이들은 몸을 써야 컨디션도 좋아진다. 주안이 역시 마찬가지다. 운동으로 풀어주지 않은 날은 표정부터가 다르다. 웃음도, 발걸음도, 대답하는 톤도 아빠·엄마가 바라고 원하는 모습(?)이 아니다. 잔소리에도 예민해진다. 부모가 하는 말이 뻔하지 않은가. 매사에 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한두 마디에도 토라져 등 돌리기 일쑤다.
사실 주안이가 운동을 한 날과 하지 않은 날의 컨디션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막연히 ‘우리 아들에게 드디어 사춘기가 왔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월드컵 이후 축구에 푹 빠진 아들과 이 추운 겨울에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신나게 뛰고 오면 토라진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컨디션 최상으로 자기 일도 척척 잘하는 게 아닌가. 축구를 하고 온 날엔 샤워하고 나와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입었던 옷을 빨래 통에 넣으러 가면서 엉덩이를 실룩 흔들더니 나를 보며 눈웃음 한번 찡끗하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웃음도 많아지고 에너지가 넘친다.
주안이의 애교 덕분에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잠자리에 드는 과정도 훨씬 효과적이다. 운동을 못한 날엔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어서인지 늦게까지 자려고 하지 않는 느낌이랄까. 대화라도 하자며 내 눈을 마주하기 일쑤인데, 운동을 한 날은 그 과정이 굉장히 간결해진다. 숙제를 끝내고, 하고 싶었던 게임이나 영상을 딱 시간 정해서 보고, 양치 후 스르르 잠이 든다. 잔소리할 필요가 없다. 체력적으로 조금 힘든 것만 빼면 주안이와 노는 시간이 참 소중하고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자라면 친구들과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부모와 함께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아들이 참 고맙고 사랑스럽다. 아직은 아빠랑 놀아주겠다는 아들을 위해 이 한 몸 축구장에서 불태워보겠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그렇다. 아빠의 체력은 국력이다!
글쓴이 손준호
1983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뮤지컬 배우다. <팬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페라의 유령> 등 다수의 뮤지컬에 출연했다. 지난 2011년 8살 연상의 뮤지컬 배우 김소현과 결혼해 2012년 아들 손주안 군을 얻었다. 뭘 해도 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빠다.